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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멍때리기

입력
2016.05.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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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멍때리다’라는 표현의 속뜻이 바뀌고 있다. 원래는‘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는 뜻으로 부정적 의미가 짙었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멍때리는 학생은 선생님에게 뒤통수나 맞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2013년 정신과 전문의 신동원씨가 <멍때려라!>(센추리원 발행)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펴낸 뒤 멍때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는 중이다. 어느 새 휴대폰과 인터넷 없이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게 된 수많은 대중들에게 신씨는 말했다. 혹사 당하는 뇌를 쉬게 하기 위한 멍때리기에 나서라고….

▦ 사실 휴대폰이 일상화하면서 우리는 온라인(On-Line)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정보와 접속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든, 지하철을 타든, 사람을 만나든, 잠시라도 휴대폰을 못 보면 초조하고 불안한 ‘노모포비아(Nomophobia) 증후군’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이런 모바일 습관이야말로 생각을 죽이고, 스트레스만 쌓는 자해행위라는 게 신씨의 주장이다. 그래서 오프라인 상태에서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뇌를 쉬게 하는, 적극적 무념무상의 휴식인 멍때리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쉬게 하는 건 이미 전통사회 때부터의 오랜 정신수양법이기도 했다. 불교에서 비롯한 용어인 무념무상이나, 마음을 쉬게 하여 흔들림 없는 고요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뜻의 선정(禪定), 선정에 이르는 수양법인 참선(參禪) 같은 말이 대중적으로도 널리 쓰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뭔가 집착해 열심히 매달리는 것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가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진짜 생각과 지혜는 잡다한 자극으로부터 뇌가 쉬는 고요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 멍때리기는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2014년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처음으로 ‘멍때리기 대회’까지 열렸는데, 지난해 중국 베이징 대회를 거쳐, 지난 7일엔 경기 수원에서 제3회 국제멍때리기 대회가 열릴 정도로 커졌다. 오는 22일엔 서울시가 이촌한강공원 청보리밭 일대에서 ‘2016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하는데, 단 하루 만에 내외국인 신청자 1,500명이 몰려 참가자 모집을 조기 마감했다고 한다. 대회를 통해서라도 ‘공해’에서 벗어나고플 정도로 모바일과 인터넷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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