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14차례만 환율 바꿔
38개월 동안은 환차익 보기도
“피해 산정 어렵다” 시정명령뿐
“솜방망이 처벌” 비난 쏟아져
롯데와 신라 등 8개 주요 면세점이 제품 판매가격을 달러 표시로 전환하기 위한 적용환율을 상습적으로 담합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으로 발생한 소비자 피해를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며 과징금 없이 시정명령을 하는 데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2007년 1월~2012년 2월까지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국산 화장품과 홍삼 등의 적용환율 및 적용시기를 유ㆍ무선 전화 연락 등을 통해 담합한 혐의로 롯데면세점(호텔롯데ㆍ부산롯데호텔ㆍ롯데디에프글로벌ㆍ롯데디에프리테일), 신라면세점(호텔신라), 워커힐면세점(SK네트웍스), 동화면세점, 한국관광공사 등 8개 면세점 사업자에게 시정명령을 부과했다고 11일 밝혔다. 면세점에서는 국산품을 원화로 사서 달러 가격으로 판매를 하는데, 시중환율이 아닌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적용환율로 환산한다. 적용환율이 시장환율보다 낮으면 면세점이 이득을 보게 되고, 반대로 높으면 손실을 보게 된다.
공정위 조사 결과 면세점들은 매일 환율이 바뀜에도 불구하고 5년 동안 단 14차례만 적용환율을 조정했다. 특히 63개월 기간 중 38개월(60.3%) 동안은 시장환율보다 낮은 적용환율을 적용해 환차익을 봤기 때문에 가격 담합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사업자들 역시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2012년부터는 담합을 중단했으며, 일부 사업자는 환율 합의 사실을 인정하고 최근 공정위에 리니언시(자진신고 감경제도)를 신청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담합은 인정하면서도,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담합으로 면세점 간 가격 경쟁이 제한됐지만, 적용환율이 시장환율보다 높은 기간이 있는 등 담합으로 면세점들이 얻은 부당 이득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달러가격이 정해졌지만 환율보상 할인과 같은 다양한 판매촉진 할인을 통해 실제 판매 가격에서는 면세점마다 차이를 보이면서 사실상의 경쟁이 이뤄졌다는 점도 감안이 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 계량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며 “사실상 중간 과정인 환율 적용 단계에서의 담합이라는 점에서 통상적인 가격 담합과도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담합 행위에 대한 제재로는 수위가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정명령은 공정위가 부과할 수 있는 제재 중 경고 처분 다음으로 낮은 수위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환율을 담합했는지 여부와 면세점마다 실제 판매 가격이 달랐는지 여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환율을 담합했다는 게 결론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과징금 제재가 당연히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올 연말 결정되는 서울시내 면세점 추가 승인에서 이번 담합 건이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내린 결론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종=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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