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4가 방산시장 뒷골목 ‘은주정’은 쌈 싸먹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로 유명하다. 1986년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땐 주변 상인들 만의 ‘숨은 맛집’이었으나, 이제는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와, 점심시간엔 번호표를 받고 한참 줄을 서야 한다.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 중에도 은주정 사장 김진숙(55)씨가 푸짐하고 매콤한 손맛뿐 아니라 꾸준한 기부를 실천해온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도 갖추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씨가 기부를 시작한 건 2008년. 손님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줄 방법을 고민하던 그가 후원자와 수혜자를 연결해주는 서울 중구청의 ‘드림하티’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월 5만원으로 시작했지만 형편에 맞춰 기부금을 조금씩 늘렸다. 지금은 매월 110만원에 해당하는 10㎏짜리 백미 50포씩을 을지로동 저소득 가구에 전달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2013년부터는 연 2, 3회 열리는 중구민 걷기대회에 식사권과 드럼세탁기 등 500만원 상당 경품도 지원해왔다. 하지만 행사 때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아는 주민들이 많지 않다. 지난해 7월부터는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중구 인재육성장학재단에도 장학금을 월 10만원씩 내고 있다. 최근에는 딸 이름을 딴 민요악단 ‘은주사랑예술단’을 꾸려 위문공연도 한다. 김씨가 이렇게 지원해온 기부금을 합하면 약 2,500만원에 이른다.
넉넉한 마음 씀씀이 덕인지 손님도 나날이 늘면서 최근에는 별관도 꾸렸다. 김씨는 “별로 길지 않은 점심시간에 줄 서서 먹는 직장인들에게 미안해서 매장을 늘렸다”며 “그만큼 기부도 더 많이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직원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손님에게 친절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게 옥상에 직원 숙소와 운동시설도 마련하려고 준비 중이다.
대박 식당 주인이지만 김씨는 가게와 가까운 을지로 11평짜리 아파트에 산다. “밤늦게 들어가 새벽에 나오는데 좋은 집에 살 이유가 없어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픈 데 없고 남을 도울 수 있으니까요. ‘기부 맛’을 들이면 자발적으로 하게 돼요. 남에게 알릴 필요 있나요.”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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