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이 지나가고 있다. 며칠 전 ‘어버이날’에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단 우리 시대의 어버이들을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어버이날도 다른 기념일처럼 실은 외부에서 이 땅에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고, 이것을 1973년에 어버이날로 바꿨다. 일종의 수입된 기념일인 셈인데, 충효(忠孝)를 근간으로 하는 전통시대의 덕목이 오늘의 산업화ㆍ정보화 사회에 ‘경로효친’의 사상으로 개개인에게 내면화됐다고 할 수 있다.
어버이날 익숙한 서민적 풍경은 붉은 카네이션, 그리고 갈비집일 것이다. 건강을 기원하는 꽃말의 붉은 카네이션이나, 흘러간 옛 맛을 양념장으로 입혀낸 돼지갈비에서 어떤 ‘노년’의 그림자를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카네이션과 돼지갈비 사이로 어버이날이 지나간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골목골목 펼쳐진 우리들 삶의 풍경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카네이션과 돼지갈비는 경제적 수준에 따라 다른 문화적 기호로 바뀌겠지만, 이 단순한 환대의 구조는 ‘가족’이란 틀을 중심으로 해서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은 출판 쪽을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검색어로 해서 인터넷 서점을 한번 훑어보라. 나열되는 책의 목록이 어떤 것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작가들을 비롯해 사회 명사들의 아버지 회상이 주를 이룬다. 좋은 아버지, 어머니 되기를 설명하는 책들도 더러 눈에 들어온다. 전자의 책에서 아버지와 화자는 불화의 시간을 지나 결국 ‘화해’하거나,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로 성급하게 그려진다. 후자의 책에서 아버지·어머니는 교과서적인 역할 주체가 된다. 어디에도 구체적인 아버지가 존재하기보다 추상화되고 이상화된 아버지가 우뚝 서 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깊은 시선은 존재하지만, 그 시선에 의해 그려진 아버지는 좀처럼 뼈와 살이 만져지지 않는다.
과연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가 누구냐는 이 질문은 지금으로선 작가들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불의 제전’을 쓴 작가 김원일은 ‘아들의 아버지’(문학과지성사, 2013)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문득, 이 나이가 되도록 가물가물한 기억 저편에 있는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당신의 면면을 내 소설 속에 더러 등장시키긴 했으나 내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당신을 올곧게 그려본 적 없었다는 그 어떤 부채 의식을 뒤늦게 깨우쳤다.”
‘변신’, ‘심판’으로 잘 알려진 카프카는 어떤가. 폐결핵에 걸려 숨을 거두기 몇 해 전에 카프카는 아버지를 향해 한 통의 편지를 쓴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이재황의 번역본으로 199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소개됐고, 정초일의 번역본으로 2015년 은행나무에서도 소개됐다)가 그것이다. 이재황에 따르면, 카프카의 삶에 있어서 ‘아버지’는 현실의 문을 지키고 서 있는 거인 같은 존재였다. “그에게 ‘아버지’는 늘 모든 사물의 척도였으며 가부장적 세계 질서의 대변자로 여겨졌다. 그는 이런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지배-종속 메커니즘의 실체를 거듭 체험적으로 확인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은밀히 모색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그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었다.”
김원일과 카프카가 그려낸 ‘아버지’를 같은 선상에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한 것 같다. 작가의 상상력에 깊이 드리운 근원적 존재로서의 아버지, 이 모습은 과연 문학만이 탐색할 수 있는 대상일까 하는 의문 말이다. 이쯤에서 ‘아버지 연구’의 확산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UCLV 인류학과 교수인 피터 B. 그레이와 오클라호마대 인류학과 교수인 커미트 G. 앤더슨이 쓴 ‘아버지의 탄생’(한상연 옮김, 초록물고기, 2011)과 같은 연구는 어떨까.
예컨대 이들은 아버지가 될 때 남성의 신경내분비계는 어떤 변화를 겪는가, 자식 생각은 아버지의 뇌를 어떻게 바꿔놓는가 등과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책의 부제인 ‘진화론, 비교생물학 등으로 살펴 본 아버지의 본질’을 추적해간다. 아버지가 누구냐, 어떤 존재냐 하는 질문을 인류학자가 피해가지 않은 것이다. 이 책에 쏟아진 진화심리학자의 호평을 보면, 아버지 연구는 이들에게도 자료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아버지 연구가 가능한 분야라면 이 인류학 이외에도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을 먼저 열거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사회학의 경우, 우리 시대의 구체적인 아버지 상을 추적해 직업, 지역, 교육, 생활수준, 의식, 소비형태, 가치관 등 전체적인 한국의 아버지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사회학 분야가 먼저 그런 작업을 치고 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소설 속에 그려진 아버지의 육체가 하나 둘 다양한 연구를 통해 전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아버지의 자리’를 짊어진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한 존재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의 골목 풍경을 조금은 더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끌어안을 수 있지 않을까.
최익현 교수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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