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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선생 강사 스승

입력
2016.05.1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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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무언가 다른 재밋거리를 찾아다니느라 학교를 며칠 빠진 적이 있었다. 말없이 일탈을 인내하던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마음 졸이며 찾아간 선생님의 얼굴에는 일탈에 대한 분노 대신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그때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데, 어떤 ‘미묘함’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내적 소통이 만든 감정이리라.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는 선한 마음, 이익을 취하려는 악한 마음. 맹자와 순자는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다르게 본다. 하지만 두 철학자가 이런 주장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교육에서 만난다. 선한 마음을 북돋우고 나쁜 마음을 제어하는 것. 서양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를 확인하자고 플라톤까지 갈 필요는 없다. 독일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는 ‘교육은 스스로의 인격형성’이라고 좀 더 명쾌하게 규정한다. 그에게 교육은 단순한 지식전달이어선 안 되며, 집처럼 편안함 속에서 진행되는 삶과의 소통이어야 한다. 인터넷강의가 익숙한 시대지만, 화면 속 강사를 스승이라고 하지 않는 까닭이다. 학교 교육의 목표도 응당 여기에 맞추어져야 한다. 특히 청소년에게 선생은 강사 이상, 즉 스승이어야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조직될 때 사학과 정부가 반대한 명분은 군사부일체였다.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스승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게 말이 돼? 사람에 따라선 반대할 만한 일이었다. 스승은 인터넷 속의 강사와 다르니까. 그런데 문제가 기간제 교사로 옮겨가면 좀 헛갈린다. 전체 교사의 10%인 4만명 정도가 기간제인데, 그 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그중 절반 정도가 담임을 맡고 있다고 하니, 이들을 단순 강사로 보기 어렵다. 그런데 전교조를 반대하던 누구도 기간제 교사를 문제 삼지 않는다. 전교조에 대한 사학과 정부의 속내가 의심스러운 까닭이다. 사학 비리도 눈감아 주고, 정부가 무슨 일을 해도 고분고분한 강사가 좋은데, 스승은 그게 안 되니 불만인 게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군사부일체 운운하던 이들이 스승을 기간제로 쓰다 버리나.

과거 문교부에서 일선 교육청에 보냈던 ‘전교조 교사 식별법’은 전교조가 노동자로서 권리보다 스승으로서 책무에 더 큰 의미를 두었음을 보여준다.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가 전교조 교사라는 대목에 이르면, 도무지 말문이 막힌다. 조선총독부에서 당시 교육청에 보낸 문서가 아닐까 놀라서 확인했지만, 대한민국 문교부가 보낸 문서가 틀림없었다. 이 충격 이후 조선총독부와 대한민국 정부를 가끔 구분하지 못하는 병이 생긴 듯하다. 그나저나,

지난 해 말, 이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4명에게 린치를 당한 선생은 강사일까 스승일까. 그 학생들에게 스승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을 검색하면 엄청난 지식이 정말 비명처럼 쏟아진다. 단순한 지식 전달용 학교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학교 대신 집에서 교육하는 부모들 소식이 간간이 들리니 말이다. 역설적으로 스승 없는 학교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곧 스승의 날이다. 전교조가 행정소송에 패하면서 법외노조가 될 처지다. 제자를 분노가 아닌 안타까움으로 끌어안으며, 사람답게 키우려 애쓰는 스승들을 왜 30년을 한결같이 미워하는지. 이념적 편향을 문제 삼지만, 전교조를 싫어하는 이들이 풀무질한 풍문을 넘어 크게 문제 된 적도 없다. 도대체 창의적인 학생을 겁내며 국정교과서로 가르치려는 의도는 뭘까. 정부는 이제라도 모든 걸 제 자리로 돌려놓길 바란다. 그게 안 된다면, 대법원은 교육의 헌법적 가치를 어떻게 지킬지 그릇된 정부정책에 어떤 판단을 내릴지, 세계의 큰 흐름 속에서 오로지 법적 양심으로만 고민했으면 한다. 그래야만 판결이 생명을 얻는다. 해직교사를 꼬투리로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빼앗는 것은 냄새를 빌미로 생선가게에서 소금을 빼앗는 것처럼 미련한 짓이다. 대한민국 미래에도 애써 눈감는 일이 될 것이다.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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