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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일상화된 공포 속에서 살아남기

입력
2016.05.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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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이 사건은 특정 기업의 윤리 의식 부재만이 원인은 아니다.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 MIT에 대해서 20년 동안 유해성 심사 면제 고시를 번복했다는 점, 문제가 된 제품이 한국에서만 판매되었다는 점, 유해성이 예측되었음에도 연구결과를 조작하고 은폐했다는 점 등 여러 문제가 합작해서 당긴 방아쇠이다. 세월호 2주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사회의 안전장치는 작동하지 않고, 책임은 개인을 겨냥하며, 위험은 더욱 광범위해졌다.

바우만은 ‘액체근대’(지그문트 바우만, 이일수 역, 도서출판 강, 2009)에서 고체성과 액체성, 무거움과 가벼움의 은유를 사용하여 근대를 두 시기로 나눈 후, 근대를 시작부터 “견고한 모든 것을 녹이는” “액화” 과정으로 규정한다. ‘액체 근대’의 특징은 ‘사회 없는 개인화’와 ‘노동에 대한 안전장치의 소멸’로 인한 가벼움, 그리고 이로 인한 공포이다. 개인은 고통의 ‘공적 이해 관심사’를 공유하거나, 공동의 문제로 응결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매질하는 것”으로 바뀐다. 최고 권력기구들이 소멸한 액체 근대에서 생존은 개인의 몫이다. 지속적인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 그나마 의지할 것이라고는 매체가 만든 정보와 지식이다. 공포 산업은 두려움을 자극하고 안전이라는 감각을 판매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역설적으로 이렇게 더 ‘잘’ 살아보려던, 더 ‘안전한’ 공기를 공급하려던 사람들이 피해자가 된 사례이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이를 잃은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유난히 깔끔을 떨더니 아이를 죽였다”라는 비난을 받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많은 경우 위험과 선택은 개인의 능력 바깥에 있지만, ‘선택하는 자유인’은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대가가 아무리 가혹해도. 애초에 잘못된 선택지를 제공한 사회는 슬그머니 꼬리를 자르고 숨는다. 이것은 ‘노오오력’을 강조하여 구조적 부조리를 은폐하는 자기계발 논리의 뻔뻔함과도 닮았다(피해사실을 입증하는 것도 피해자와 유족들, 문제를 인지한 의료진들의 몫이었다).

바우만의 위험사회는 위험이 지역적이나 계층적으로 한정되지 않으며,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확실성과 안전성, 보안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공포는 유동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 공포는 안전성 판정을 받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스프레이나 탈취제로 옮아가는 식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응은 보이콧과 같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본격적인 불매 운동은 대기업마저 합류할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여기에는 사용을 거부하고 대체품을 찾는 개인의 수고가 필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봄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버린 미세먼지도 마찬가지다. 건강과 환경에 치명적이며, 향후 큰 인명피해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미세먼지는 거의 국가적 재난이다. 그럼에도 적확한 원인 분석과 대책은커녕 재난 문자 한 통 없는 것이 현실이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을 삼가라”라는 권유가 전부다. 미래를 보는 능력은 없지만, 수년 뒤 미세먼지 피해자들에게는 “그러게 왜 마스크를 안 썼느냐”라는 비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바우만은 대안 중 하나로 “하나의 일반 세계시민사회”를 제시한다. 이는 칸트에게 기대는 개념인데, 좀 더 손에 잡히게 이야기하자면 ‘가만히 있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냉소하거나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연대하기. 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지금까지 많은 피해자가 그런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문제를 고발하고, 규명을 촉구해왔다. 개인의 고통은 공유할 때 공동의 문제가 되고, 협약을 체결하며, 또 다른 위험을 막을 수 있다. 세상은 다양한 투쟁으로 가득 차 있고 어떤 싸움들은, 결코 고립되거나 외롭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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