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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동료상담사 육성 ‘주먹구구’

입력
2016.05.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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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지원 못 받는 자립생활센터서

일주일 정도 교육 후 현장 투입

실무 역량 부족 상담 질 떨어져

“정부가 전문과정 적극 지원해야”

고교 3학년인 이영진(18ㆍ가명)군은 요즘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이다. 고3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에겐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계획이다. 지체장애 2급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장애아동 생활시설에서 지내온 이군은 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성인 시설로 옮길 줄 알았다. 그의 생각이 바뀐 건 지난해 시설을 방문한 김원준(43ㆍ가명)씨를 만나면서다. 김씨는 ‘시설에서 나와 직업을 갖고 당당히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많다’며 이군이 몰랐던 유익한 정보를 알려줬다. 이군은 10일 “김씨의 경험담을 들으며 용기가 생겨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군에게 자신감을 북돋워 준 김씨의 직업은 ‘장애인 동료상담가’다. 자신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지체장애 2급)인 덕분에 누구보다 장애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료들의 홀로서기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숙련된 상담가인 이씨를 만난 김군은 행운아에 속한다. 장애인 동료상담가를 양성한 지 16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교육과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자립 실무 역량을 갖춘 상담가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료상담 제도는 2000년 도입됐지만 동료상담가 양성 교육은 장애인 자립을 돕는 민간 자립생활센터가 도맡고 있다. 상담가를 희망하는 장애인에게 이틀에서 일주일 정도 상담기법을 가르친 뒤 현장에 투입하는 식이다. 이렇게 교육 받은 동료상담가는 매년 1만5,000여명이 배출되고 있다.

그러나 양적 성장과 달리 현장에서 동료상담에 의존하는 장애인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2013년 동료상담을 받은 한모(24ㆍ여)씨는 “상담가에게 시설 밖에서 만난 남자친구 문제를 털어놨지만 ‘힘들었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자립에 필요한 조언은 거의 없어 다시는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담의 질이 떨어지는 건 교육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탓이다. 센터 교육 후 실습 기간은 아예 없는 곳부터 6개월까지 천차만별이다. 또 예산 부족으로 수요가 있을 때에만 일하는 비정규직 활동가가 대부분이어서 지속적인 상담 역량을 키울 기회도 부족하다.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기초생활보장제도조차 잘 모르는 상담가들이 수두룩하다”고 지적했다.

지원에 인색한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는 자립생활센터 및 동료상담가 양성 기관 지정에 관한 운영 기준만 명시돼 있을 뿐, 지원 근거에 대한 규정은 없다. 센터가 법령이 정한 장애인복지시설에 포함되지 않아 정부 지자체에서 보조금은 나오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자립생활센터는 복지시설이 아니라 필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데다, 대다수 센터가 영세한 규모여서 동료상담 전문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서해정 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이미 장애인단체들을 중심으로 표준화한 상담매뉴얼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센터 개별 능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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