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이 일어난 일본 구마모토에 관한 TV 프로그램에서 한 노부부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화면 속 부부는 지쳐 보였다. 리포터는 인터뷰 중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그립다던 부부에게 다음날 토마토를 들고 찾아갔고 할머니는 울음을 쏟아냈다. 일상을 순식간에 송두리째 빼앗긴 설움이 전해졌다.
노부부가 인터뷰 중 딱 한번 웃는 순간이 있었다. 친척집 창고로 이사를 떠나는데 거북이를 챙기길래 뭐냐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이름이 ‘카메오’랑 ‘두코후구’라며 아주 작을 때부터 키웠다고 환하게 웃었다.
“가족이에요, 가족.”
거북이 가족까지 무사한 게 할아버지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이삿짐 트럭은 거북이의 집인 커다란 수조가 반을 차지한 채 떠났다.
동물 전문 출판사를 하다 보니 사람들과 만나면 반려동물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도 할아버지와 같은 답변을 한다. “가족이죠.” 그러면 그게 어떤 의미냐고 재차 묻는다. 가족의 의미는 사람마다, 가정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언제나 기댈 수 있고 든든하고 위안이 되는 가족도 있지만 때로는 짐이거나 지긋지긋하거나 안 보고 살기를 바라는 존재일 수도 있다. 사람과 반려동물의 관계도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가족, 보통의 관계이다.
여행 가방 안에 개가 들어가 앉아있는 표지가 귀엽다는 단순한 이유로 구입한 책인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의외로 가족과 소중한 것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어느 날 친구들과 만약 집에 불이 난다면 무엇을 챙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올릴 수 있는 사이트 ‘버닝하우스(www.theburninghouse.com)’를 연다. 순식간에 사이트는 전 세계 사람들이 올린 사진과 글로 가득 찼다. 값비싼 소유물을 과시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필요한 것보다 소중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통계적으로 불이 난 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고 나온 건 카메라와 사진이었다. 노트, 일기장, 편지도 많았다. 모두 기억과 관련된 것들이다. ‘기억이 곧 나 자신’이라면 사람들은 자신을 가장 먼저 구조한 셈이다. 지갑, 여권도 상위권이었는데 이후로도 살아가야 하니 실질적인 당연한 선택이다.
반려동물은 50명이 구한다고 답해서 11위에 해당됐다. 반려인은 반려동물을 100% 구조했지만 반려동물이 없는 사람도 있으니 저자 자신이 밝힌 대로 비과학적인 조사 결과이다.
책 편집자로서 책을 갖고 나온다는 답변이 많아서 반가웠고, ‘몰스킨’이라는 문구브랜드가 어찌나 많이 거론되는지 선물 받고 처박아둔 몰스킨 노트를 꺼내보기도 했다. 제 각각의 수많은 소품은 대부분 직접 구입한 것보다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들이 사준 것들이었다. 소품보다 관계에 대한 소중함이었다.
반려인은 당연히 반려동물을 가장 먼저 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진에서는 고양이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당연하다. 고양이가 소품을 쭉 늘어놓은 어지러운 공간에 사진 찍을 때까지 얌전하게 앉아 있어줄 리가 없지.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의 사진과 개의 목걸이를 챙기겠다는 사람의 글에 공감했다.
글을 올린 사람 중에는 실제로 화재를 직접 겪은 사람도 꽤 있었다. 집에 불이 나면 뭘 들고 나올지 고민하는 동안에 실제로 집에 불이 나자 생각할 것도 없이 반려동물만 안고 대피했다는 네덜란드 사람. 한 미국인은 ‘고양이랑 노트북만 챙기면 충분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불이 나자 고양이만 안고 뛰쳐나왔다면서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많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진심으로 소중한 것만을 들고 나오게 된다고 했다.
나라면 불이 난 집에서 뭘 챙길까? 사람 가족이야 알아서 대피할 테니 일단 뚱뚱이 고양이를 안고, 19년 동안 함께 살다가 이별한 반려견의 털을 보관한 주머니를 들고 나올 거다. 갖고 싶은 것도, 필요한 것도 아닌 소중한 것. 당신이라면 어떨까?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 포스터 헌팅턴,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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