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지지 여부를 놓고 충돌했던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과 트럼프가 명분 있는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당내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버몬트) 상원의원을 편드는 이이제이(以夷制夷)전법으로 벌써부터 본선 레이스를 겨냥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에 따르면 전날 라이언과 강하게 격돌했던 트럼프는 12일로 잡힌 라이언 의장과의 담판을 앞두고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CNN방송 인터뷰에서 “난 항상 그를 좋아했다. 몇 주 전 전화했을 때 매우 힘을 실어줬고 정말 친절했기 때문에 모든 게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라이언 의장이 자신에 대한 ‘지지 유보’를 선언하면서 기습 공격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전날 ‘라이언 낙선 운동’까지 촉구한 일에 대해서는 “나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의 화해 제스처는 본선 대결에 투입될 선거자금 때문이다. 클린턴 전 장관과 맞설 본선 경쟁에서 약 15억달러(약 1조7,500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원활한 모금을 위해서는 라이언 의장과의 화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뉴욕타임스도 당내 경선에서 4,000만달러의 사재를 투입했으나, 트럼프는 본선에서는 자신이 공격했던 공화당 거액 후원자에게 손을 벌려야 할 처지라고 분석했다. 일반 지지자들을 의식해 단번에 철회하지 않겠지만 코흐 형제 등 전통 공화당 후원자들의 요구에 맞춰 거친 주장과 공약의 수위를 낮출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진영에서도 이날 라이언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케빈 크래머(노스다코다) 하원의원은 “그가 의장직을 유지하며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다니엘 웹스터 하원의원(플로리다)도 “라이언이 물러나기엔 이르다.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며 “우리가 11월 본선에서 이기려면 모두 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라이언 의장도 양면 전술을 폈다. “트럼프가 원한다면 전당대회 의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자존심을 세우면서도 “절대 안 된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화해 가능성을 열어 놨다.
한편 트럼프는 민주당의 내분을 조장하고 일부 급진성향의 샌더스 의원 지지자들을 포섭하려는 등 샌더스 의원을 치켜세우거나, 그의 주장과 유사한 정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지난 주말 오리건주 유세에서 “샌더스가 100% 옳다. 힐러리는 돈 대주는 사람들, 즉 월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말했고, 기존 공화당 주류의 가치와는 상충되는 과감한 최저임금 인상과 부자 증세도 약속한 상태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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