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단에 서는 필자에게 스승의 날은 피하고 싶은 날이다. 평소에도 기리지만 특별히 날을 잡아 정중하게 그 뜻을 기리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게다가 진정 어린 감사의 말에 절로 뿌듯해짐은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피하고 싶은 까닭은,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보다는 간단없이 스승 삼을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이다.
스승은 제자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스승은 항상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틀림없는 진리라 할지라도, 광야에서 저 홀로 외친다면 그는 결코 스승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엄청 잘 가르친다는 것이, 또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것이 스승의 필수조건이 아니다. 설령 잘 가르치지 못하고 그만그만한 인격의 소유자라도, 그를 스승으로 삼는 그 누군가가 존재할 때 비로소 스승이 된다.
그래서일까, 현자들은 ‘스승 되기’보다는 ‘스승 삼기’를 즐겼던 듯하다. 맹자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사람들의 병폐는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를 자기 밭은 내버려두고 남의 밭에서 김매려 하는 꼴이라며 비판한 그는, 자기 밭을 경작하는 방도로 ‘상우(尙友)’, 그러니까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벗으로 삼는다’는 길을 제시했다. 여기서 상(尙)은 위로 올라간다는 뜻인 ‘상(上)’과 같은 뜻으로, 맹자는 거슬러 올라가는 출발점으로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자기 고장을 설정했다.
그는, 자신이 자기 마을에서 최고라면 다른 마을의 최고와 벗 삼을 것을 요구했다. 여기서 벗으로 삼는다 함은 벗을 자신의 도움거리로 삼는다는 뜻이다. 우(友)는 ‘돕다’는 뜻의 우(佑)’와 통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벗 삼는다 함은 스승 삼는다는 것과 진배없게 된다. 언제라도 활용할 수 있는 인맥을 구축한다는, 그런 속물적 욕망을 말함이 아니다. 인격적으로 또 지적으로 자기를 강화하는 데의 자산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하여 자기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벗 삼기는 마을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 됐다. 다른 마을의 최고와 벗 삼음으로도 부족하다면, 한 나라의 최고와 벗 삼을 것을 주문했다. 그로도 부족하면 온 천하의 최고와 벗 삼을 것을 요구했고, 이로도 부족하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최고의 현인들과 벗 삼으라고 권고했다. 그들의 언행이 담긴 책이 있기에 이미 세상을 떠난 이와도 너끈히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스승 삼기는 공시적으론 온 천하를, 통시적으론 온 역사를 대상으로 수행돼야 한다고 본 셈이다. 이는, 그가 역사에서 만나 참스승으로 삼은 공자에게서도 목도된다. 그는 “셋이 길을 가면 그 중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게” 마련이라며, 그 중에서 선한 이를 가려내어 그를 좇으라고 가르쳤다. 만약 그 중에 선하지 못한 이가 있다면, 그에 비추어 자신을 고쳐나갈 줄 알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그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권유이지, 그를 가르치라는 요구가 아니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의 현자들처럼, 공자도 부정적 대상을 자기 강화의 계기로 삼을 줄 알았던 것이다.
이는 공자나 맹자 시절에만 유효했던 관점이 아니었다. 맹자 사후 천여 년이 훌쩍 흘렀을 즈음, 한유(韓愈, 768~824)라는 큰 학자가 출현하였다. 그는 성리학의 단서를 놓은 인물로 추앙됐을 뿐 아니라, 글의 성취도 매우 높아 이후 천여 년에 걸쳐 문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승에 대한 논설’이란 뜻의 ‘사설(師說)’은 그러한 글 중의 하나로, 여기서 한유는 스승 삼기의 절정을 보여줬다.
그는, 스승 삼기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이 절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익히 알고 있는 얘기다. 다만 우리 행동이 실제로도 그러한지를 되짚어본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오죽하면 공자가 성인임을 입증하는 근거 중 하나가 아랫사람에게 물어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였을까. 한유도 나이를 무기 삼아 다른 이의 스승 되기를 단호히 거부한 셈이다.
그런 다음, 그는 “도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다”는 명제를 제출했다. 누군가를 스승으로 삼는다면, 그 근거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에게 있는 도 곧 진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와 같은 성인에겐 정해진 스승이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실제로 공자는 신분과 나이, 사상 유파를 떠나 자기에게 없는 도를 상대가 지녔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않고 가르침을 청했다. 한 줄기가 아닌, 여러 줄기로 물을 댐으로써 자신이란 밭을 풍요롭게 가꿨던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스승의 날이다. 이 날이 불편한 까닭은 ‘스승 삼는’ 이들이 아니라 ‘스승 된’ 내가 기려지는 듯싶어서이다. 물론 우리네 삶터는 승자독식의 정글로 변질되어 진리 등의 인문적 가치가 가물대고 있다. 도를 스승 삼으려 해도 그것이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진 시절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별 위안이 되질 않는다. 그나마 올해는 스승의 날이 일요일이란 점이 작은 위안일 뿐이다.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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