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42) 감독은 데뷔작 ‘추격자’ ‘황해’에 이어 6년 만에 내놓은 영화 ‘곡성’까지 자신이 만든 장편영화 3편이 모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평가는 갈린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영화제의 연이은 러브콜만 봐도 나 감독이 천재성을 인정 받은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난해한 예술적 감성에 기울어 영화제 맞춤형 감독이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곡성’은 “한 번 보고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라는 평까지 나오면서 관객들에게 많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한 마을에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등장하면서 괴질이 돌고 의문의 살인사건들이 벌어지는 섬뜩한 이야기가 ‘곡성’의 줄거리다. 초자연적인 대상으로부터 딸 효진(김환희)을 구하려는 경찰 아빠 종구(곽도원)의 처절한 고군분투가 영화를 이끈다. 초자연적인 위협에 노출된 인간의 나약함을 그리려는 듯 악마, 무당, 귀신 등 온갖 강렬한 소재들을 한 대 엮어 숨가쁜 전개를 이어가는 게 영화의 특징이다.
‘곡성’은 “영화에 기가 빨렸다” “2시간 40분 동안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등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심상치 않은 반응들이 쏟아지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개봉 일정을 하루 앞당겨 11일에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걸 보면 긍정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11일부터 열리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작품성과 대중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도 ‘곡성’이 주목 받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10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곡성’은 할리우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밀어내고 예매점유율 1위에 올랐다. ‘곡성’의 예매점유율은 33.4%로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예매점유율 27%보다 앞서있다.
나 감독이 말하는 ‘곡성’은 어떤 영화일까.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그는 “‘곡성’은 코미디와 고딕(초자연적인 힘을 주제로 하는) 장르가 기본 토대”라며 “한국의 굿이나 엑소시즘 등을 보여준 건 인간과 종교의 연관보다는 신과의 관계를 조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나 감독과의 일문일답.
-그간 개봉한 장편 중 첫 15세관람가 등급이라 편하게 볼 줄 알았다.
“‘곡성’은 최대한 단순한 구도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 단순했는지 15세 관람가를 받아서 자괴감까지 들었다. ‘유아용으로 본 것인가’ 하는. 구조가 단순할 뿐이지 얼마든지 성인물이 될 수 있다. 자극적인 게 아니라 영화를 본 뒤 관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게 성인물이지 않겠나. 영화를 왜곡하고 비틀고 하는 건 관객이 규정하는 일이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히 재미있게 만들어야 했다. 단순화와 재미를 모두 잡고 싶었다.”
-샤머니즘, 엑소시즘 등이 총 집결됐다. 이유가 있나.
“코미디와 고딕 장르를 기본으로 한 영화다. 고딕 장르에서는 내가 한국인이고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굿을 드러내게 된 듯하다. 코미디와 고딕 안에서 하이 장르를 믹스한 결과가 지금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정한 장르로 규정짓고 간 것은 아니다. 코미디 장르는 꼭 넣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가톨릭 사제가 등장하는 등 종교적인 색채도 진하다.
“종교와의 연관보다는 신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고 가해자도 있다. 이건 분명한 팩트(사실)다. 그런데 한 날 한 시에 수많은 인간이 사라졌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신의 입장에서는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것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그런 부분을 얘기하는 것 같지 않지만 여러 생각들을 집어 넣었다. 그간 ‘추격자’나 ‘황해’가 가해자들의 입장이었다면 이번에는 피해자들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왜 그들이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지. 신만이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럼에도 나 감독의 영화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도 있다.
“작가(나 감독은 ‘곡성’의 각본도 집필했다)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관람하고 느끼는 분들, 관객이 어떻게 보셨는지가 중요하다. 개개인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이 중요한 것이다. 작가의 의도 따위가 관객의 그것에 절대 미칠 수 없다.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설사 어렵다는 말을 듣더라도, 관객들에 의해 회자되어 몇 년, 몇 개월씩 영화관에 걸리는 영화가 있었으면 하는 게 소원이다. 영화가 오래 사는 길은 최대한 관객에게 (생각할 수 있는)무언가를 던져드리는 일이다.”
-점점 마니아적 성향의 영화들을 선보인다는 평도 있는데.
“사실 ‘황해’는 상당히 마니아적인 의도로 만든 영화였다. 30대 중반쯤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예매하려고 하면 보고 싶은 영화가 없더라. 영화관에 갈수록 점점 보고 싶어지는 영화가 없어지더라.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황해’를 만든 것이다. 작은 바람은 ‘황해’를 보고 난 뒤 남자들이 담배를 뻑뻑 피워가면서 ‘뭐 저런 영화가 다 있어!’하는 반응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곡성’은 그 반대로 간 영화다.”
-그럼 ‘곡성’은 어렵지도, 마니아적 성향도 없다는 것인가.
“‘곡성’의 목적은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인사이트가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고 싶었다. 사실 아픔은 너무도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그런 것을 겪어보지 못한 내가 위로한다는 게 쉬울 수 있었겠는가. 3년 간 영화를 준비하면서 그 속에 조금이라도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 위기 위해서, 정말로 스스로도 아픔을 느끼고자 했다. ‘황해’는 마니아적 성향으로 그런 의도로 만들었지만, ‘곡성’은 분명히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그(마니아적 성향) 반대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대중적으로 가고 있다는 말인가.
“시나리오를 쓸 때 ‘어느 지점에서 관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연 몇 퍼센트 이해할까’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작업한다. ‘곡성’은 특히나 이러한 점들을 더 고민하면서 글을 썼고 영화를 연출했다. 그리고 관객들이 결론에 대해서 열린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게 아닌가 싶다. ‘곡성’은 관객이 느낀 그대로가 결말이고 작가의 의도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마니아적인 의도로 만든 영화가 아니다.”
-곽도원의 캐스팅도 적절했다.
“곽도원은 ‘황해’ 때 같이 작업하면서 인상적인 배우였다. 여러 장르의 구조를 가진 영화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서로 마음이 잘 통해서 순대국집에서 밤부터 시작해 대낮까지 소주를 한참 마신 적이 있다.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참 선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꼈다. 상업영화에서 관객을 상대로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면 배우가 갖고 있는 선함이 보여야 한다. 영화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악랄한 연기 속에서도 선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곽도원에게도 이러한 인간적인 선함을 봤다.”
-첫 주연을 맡긴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조연배우를 주연으로 기용했다는 건 당시에 내가 자신감을 가졌다는 얘기다. ‘추격자’ ‘황해’를 통해 김윤석 하정우라는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그분들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촬영 현장에서 어떻게 연기를 하고 어떻게 (제작진과) 소통하는지를 보면서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곽도원을 첫 주연으로 발탁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특히 김윤석 선배는 ‘곡성’에도 상당히 많은 조언을 해줬다. 영화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하정우 김윤석 두 분께 감사 드리고 싶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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