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온 모양이다. 日本國이 相手國에 無條件 降伏하엿다는 라디오 放送이 잇다는 것이다. 朝鮮이 엇지 될 것인가가 문제인 모양이다. 가슴이 울넝하여진다. 午後 車로 아번님과 魯井이가 報恩에 倒着되시엿섯다.” 1945년 8월 15일. 이제껏 일본어로 적힌 일기가 국한문 혼용으로 바뀐 날이다. 1947년 무렵부터는 한자도 차츰 사라지고 점차 한글만으로 일기가 기록된다. 1961년부터는 서서히 한문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글 전용 시대의 흔적이다.
전북대 ‘SSK 개인기록과 압축근대 연구단’은 충북 청주를 중심으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던 곽상영(1921~2000) 선생이 남긴 64년간 일기(1937~200년)를 추려 ‘금계일기 1ㆍ2권’(지식과교양)을 최근 냈다. 금계는 곽 선생이 나고 자란 금계리에서 따왔다. 1ㆍ2권은 일단 1970년까지의 기록만 정리했다.
곽 선생은 기록광이었다. 64년간 일기를 썼을 뿐 아니라 가계부는 59년간, 교사ㆍ교감ㆍ교장일 때는 수업ㆍ교무ㆍ학교경영일지를 각각 따로 기록했다. 책을 읽은 뒤엔 독서록을 남겼고, 제자 이름만 따로 모아둔 제자명부도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10여년 간은 꿈 얘기를 따로 모은 꿈 기록장도 있다. 술을 덜 마시기 위해 음주 정도를 5점 척도로 나눠서 기록할 정도다. 이런 세세한 기록 사이에 광복, 한국전쟁, 4ㆍ19혁명, 5ㆍ16쿠데타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배어들어 있다. 해제를 붙인 전북대 연구자들은 이 일기에서 한국 전통 가족의 해체와 공무원 조직을 철저히 이용하려 든 이승만ㆍ박정희 정권의 통치술 등을 읽어낸다.
차곡차곡 쟁여온 일기는 귀중한 사료다. 전북대는 우리의 20세기사를 이 일기로 정리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에 나온 금계일기는 전북 임실의 한 농민의 기록을 담은 ‘창평일기’(1969~1994)에 이은 두 번째 결과물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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