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수 측 발췌·왜곡 책임 옥시 변호 맡은 김앤장에 돌려
증거인멸 등 고의성 입증 안되면 법적 책임 지우기 쉽지 않아
김앤장 “실험에 관여한 적 없다”
“검찰 수사로 사실관계 확정돼야 사법처리 여부 알 수 있을 것”
뒷돈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 제조ㆍ판매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측에 유리한 보고서를 작성해 준 혐의 등으로 7일 구속된 조모(56) 교수 측이 실험보고서를 발췌ㆍ왜곡한 책임을 옥시 변호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돌리면서 김앤장의 변론활동이 적법한 것이냐는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옥시 측의 의뢰로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 평가’ 연구용역을 맡은 조 교수는 옥시와 김앤장 관계자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2011년 11월 중간발표 및 2012년 2월 최종발표를 갖고 살균제의 유해성이 드러난 생식독성실험과 흡입독성실험 결과를 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4월에는 김앤장 소속 변리사와 옥시 연구원이 원 실험데이터도 모두 받아 갔다고 밝혔다. 조 교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동인의 김종민 변호사는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 있던 옥시와 김앤장이 연구결과 중 옥시에 유리한 부분만 발췌해 법원과 검찰에 제출한 경위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김앤장과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간 인과관계가 낮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조 교수의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미다.
김앤장은 9일 이에 대해 “우리는 실험에 전혀 관여한 적이 없고, 조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를 전달 받아서 2013년 3월 민사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만약 다수의 실험보고서 중 유리한 것만 검찰이나 법원에 제출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김앤장에 법적 책임을 지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당한 변론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해 변호인을 처벌하려면 김앤장이 의뢰인의 혐의를 회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증거인멸에 가담하는 등 고의성이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법령이나 변호사회 회칙 등에는 정당한 변론의 범위에 대한 규정이 없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증거가 10개 있는데, 의뢰인에게 유리한 3개만 법원 등에 제출했다고 해서 정당한 변론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김앤장이 적극적으로 옥시 측에 유리하게 수치를 바꾸거나 보고서를 짜깁기하는 등 조 교수의 보고서에 손을 댄 정황이 드러나면 증거인멸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는 있다. 검찰은 과거에도 김앤장을 형사처벌하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다. 지난해 검찰은 미국계 투자회사 론스타 측으로부터 수억 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죄)로 장화식 전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앤장 변호사가 장씨가 뒷돈을 받는 과정에 개입한 정황을 파악해 배임수재 방조혐의 적용을 고려했다. 하지만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형사처벌하지는 못했다.
2012년 SK그룹 횡령 수사에서도 김앤장 변호사의 사법처리가 검토됐다.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검찰 조사 당시 진술을 1심 재판에서 번복한 것이 변호인의 요청에 따른 것이어서 변호인의 위증교사 혐의를 적극 검토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법조계에선 검찰 수사로 사실관계가 확정돼야 사법처리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결국 검찰이 수사를 통해 변호인이 범죄의 고의를 갖고 지나친 변호활동을 한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변호사의 업무상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위법성 조각(阻却) 사유에 해당될 가능성이 크다”며 “검찰이 이 같은 행위를 문제 삼으면 의뢰인의 변호인으로부터 조력 받을 권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 관계자는 “어떤 절차를 거쳤든 증거로 쓰인 보고서에 대해선 작성자(조 교수)가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라면서도 “옥시 등에 대한 본 범죄가 확정되고 나서 조 교수가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경위와 사실관계 등을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