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를 해도 법인세보다는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먼저 올려야 한다는 연구보고가 나왔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작성해 9일 알려진 ‘국제비교를 통한 우리나라 세목별 세 부담 수준의 결정요인 분석’이 그것이다. 보고서는 여소야대로 재편된 20대 국회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등이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기획재정부가 의뢰한 것이어서 정부 입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소득자 소득세 실질과세 확대와 부가세 우선 인상은 자칫 기업과 가계, 계층 간 소득 양극화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보고서가 법인세율 인상 유보의 논거로 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3.51%(2010~2013년)로 OECD 평균 2.92%보다 이미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법인세율을 일정 수준 이상 올리면 특정 세율 구간에서는 오히려 세수가 감소하는 ‘역 U자’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법인세율 인상보다는 1995년 이후 지속적으로 커져온 법인세 감면 폭을 줄이는 방향으로 비과세ㆍ감면 제도를 정비하고, 단일세율 체계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반면 보고서가 저소득자 소득세 실질과세 확대와 부가세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배경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소득세수 비중은 2013년 3.7%로 OECD 평균인 8.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된 이유는 ‘1,600만 근로자 중 절반인 800만 명이 소득세를 안 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중간 소득 이하 근로자의 소득세 감면이 큰 때문이라고 한다. 부가세 역시 마찬가지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부가세수 비중은 4.1%로 OECD 평균 6.8%에 크게 못미쳤다. 부가세율이 OECD 평균 19.2%의 절반인 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의 타당성을 인정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간 기업 이익의 가계 재분배가 급격히 축소, GDP 대비 가계소득 비율이 OECD 최저 수준으로 악화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법인세수 비중이 높은 것 역시 기업ㆍ가계 간 이익 재분배 왜곡의 결과인 셈이다. 또 국내 조세제도는 OECD 꼴찌 수준(2010년)일 정도로 소득재분배 기능이 취약해 소득 양극화가 사실상 방치돼 왔다. 따라서 저소득자 실질과세 확대와 부가세 인상은 반드시 양극화 완화를 위한 대기업ㆍ고소득자에 대한 실질 법인ㆍ소득세 인상부터 먼저 이룬 뒤에 논의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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