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1등 아니면 못 살아남아”
계열사 슬림화 변화 신속대응
격식 파괴ㆍ문자 교환 등
현장 중심 경영스타일 선봬
메르스 사태 땐 대국민 사과로
책임지는 리더십 솔선수범
중공업ㆍ건설 부문 구조조정
지배구조 정리 ‘발등의 불’
“더 과감한 변신을” 주문 많아
이건희(74) 삼성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경영에서 손을 놓은 지 10일로 2년을 맞는다. 삼성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된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 동안 적잖은 변화를 가져 왔다. 지주회사인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했고,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양대 축으로 사업의 큰 틀도 재편됐다. 2014년 74개였던 계열사 수가 59개로 줄어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조직으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1위 지향, 실리 추구, 신중과 책임 등을 키워드로 한 새로운 삼성은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적잖다.
1위 지향의 삼성
삼성은 2014년 11월 삼성종합화학ㆍ토탈ㆍ테크윈ㆍ탈레스를 한화에, 이듬해 10월 삼성정밀화학ㆍBP화학과 삼성SDI의 화학 부문을 롯데에 매각했다. 이들 계열사 모두 업계 평균 이상 이익을 거두고 있던 터여서 매각 결정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사 매각에 대해 이 부회장은 ‘1등을 만들 최고의 오너(경영자)를 찾아준 것’이라고 언급했다”며 “1등을 할 수 있는가가 매각과 인수 등 사업 재편의 판단 기준”이라고 말했다. 1등이 아니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계열사 매각을 진두 지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1993년 6월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가 되고 만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고 했던 ‘신경영’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실리 추구
이 부회장은 대부분 국내외 출장을 수행원 없이 다니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용 헬기 6대에 이어 전용기 3대까지 매물로 내놨다. 이 부회장은 출장 때 민항기나 KTX를 이용한다.
격식도 파괴했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사장단 회의 때 보안 요원들이 90도로 인사하던 관례가 없어진 게 대표적이다. 그룹 수뇌부는 주요 사안을 보고할 때 수시로 휴대폰 문자나 이메일을 이용한다. 형식적인 대면 보고는 줄이는 대신 즉각적 대응을 중시하고 있다.
2012년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개발 등 일부 직군에서 시범 운영했던 자율 출퇴근제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도 효율성을 최우선에 둔 조치로 읽힌다. 그룹 재편이라는 하드웨어적 변화와 함께 조직문화를 바꾸는 화학적 변화도 도모하고 있다.
신동엽 연세대 교수는 “이 부회장은 위계질서에 기반한 권위주의에서 탈피, 현장 중심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며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신생 혁신 기업) 문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변화의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신중하면서도 책임지는 리더십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삼성의 1인자만 맡아온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것은 후계자 지위를 공식화한 것이다. 그리고 한 달 후 삼성서울병원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지로 지목되자 이 부회장은 곧 바로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본인의 뜻이 워낙 완강했고, 사과문도 발표 직전까지 직접 수정을 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선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반대하고 나온 것을 의식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최고 책임자로서 신중하게 위기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 부회장은 사과문을 통해 ‘대대적 혁신’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조사’‘예방과 치료제 개발 적극 지원’ 등을 약속, 여론의 악화를 막았다.
미래 먹거리는 과제
그러나 아직 이 부회장이 가야 할 길은 멀다. 먼저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게 급선무다. 삼성전자 의존도가 너무 큰 일부 계열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도 과제다. 금융 부문도 은행 없이 세계적인 금융기관으로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차원의 인수ㆍ합병(M&A)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세계 경제를 비롯 외부 요인들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지만 현재 현금을 확보한 것이 몇 년 안에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며 “신사업 관련 호재를 잡아 M&A를 한다면 1980년대 반도체를 시작했던 것과 같은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위기에 빠진 중공업과 건설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도 발등의 불이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두 지주회사 체제로 갈 것인지, 순환출자를 유지하면서 갈 것인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일각에선 총수일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배구조에만 신경 쓰다 보면 사업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어 그룹 전체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처럼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도록 주주 친화적인 지배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실수하지 않는 전략으로 일관해서는 현상 유지는 할 수 있겠지만 절대 자신의 시대를 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삼성을 위해 실패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인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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