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까지 만해도 공기업과 정부기관 및 정당의 장(長)은 모두 총재(總裁)로 불렸다. 그러다 이명박 정권 당시 민주화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로 은행장들이 쓰던 총재 호칭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도 더불어 민주당이 민주당 시절인 2001년, 새누리당(한나라당)은 2002년 당수 직함을 총재에서 대표로 고쳤고, 자유선진당도 2010년 시류에 합류해 정당에서도 총재 호칭은 완전히 사라졌다.
현재 조직의 장을 총재라 부르는 공적 기관으로는 한국은행과 대한적십자사 정도가 남아 있다. 그런데 민간 조직 가운데는 여전히, 대거 총재라는 호칭을 쓰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프로스포츠단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한국배구연맹(KOVO), 한국농구연맹(KBL), 여자농구연맹(WKBL), 한국기원의 장을 총재라 부른다. 프로축구연맹(KPFL)도 2011년 타 종목 단체의 대표와 호칭을 통일한다며 회장에서 총재로 바꿨다. 프로스포츠 가운데 남녀 골프협회만 협회장 칭호를 쓰고 있다.
프로스포츠 기구의 장을 총재로 부르게 된 데는 5대 프로스포츠 가운데 가장 먼저 출범한 야구의 영향이 컸다. 총재의 사전적 의미는 ‘사무를 감독, 총괄하며 결재하는 사람’이다. 평범한 뜻이지만 1980년대의 시대상과 맞물려 구시대의 제왕적 권위의식이 풍긴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해 역시 1982년이었다. 그렇다면 야구는 왜 당시 스포츠계에선 흔치 않았던 총재라는 직함을 썼을까.
이용일(85) 초대 사무총장의 주도로 태동한 프로야구는 1981년 12월11일 창립총회를 열고 전국 6개 지역을 연고로 창단한 구단을 모아 리그를 창설했다. 그리고 이 리그를 총괄하는 기구로 한국야구위원회, KBO(Korea Baseball Organization)를 발족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탄생한 프로스포츠 총괄 기구였기에 벤치 마킹할 대상이 필요했다. 프로야구 역사가 우리보다 약 50년 앞선 일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1983년 KBO에 기록원으로 입사해 사무총장까지 지낸 이상일(58) 전 KBO 사무총장은 “국내 프로야구 출범 당시 일본야구기구(NPB) 수장의 호칭이 총재였다”면서 “훗날 일본도 커미셔너로 바뀌었지만 당시 이용일 총장께서 일본 프로야구의 틀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수장의 호칭도 자연스럽게 총재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장은 “당시 일본은 총재가 이사회에 참가하지도 않을 정도로 특별한 권한은 없었다”면서 총재라는 ‘어감’이 주는 선입견과는 반대로 ‘권위’와는 거리가 먼 중재 기구의 성격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서종철(1981년 12월~1988년 3월) 초대 총재로 시작한 KBO는 35년간 12명이 거쳐 현재 구본능(66ㆍ18, 19대) 총재가 지휘하고 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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