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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작가의 손

입력
2016.05.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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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를 만나면 그 손을 잠시 바라본다. 정신을 활자로 표현하기 위해 가장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작가의 손이다. 작가의 손은 생각이 휘발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 온기가 식지 않도록 시간차 없이 활자로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어떤 작가는 손으로 쓰고 어떤 작가는 컴퓨터로 쓴다. 손으로 써야 마음을 꼭꼭 눌러 쓸 수 있다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이야기 흐름이 원활하다는 작가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작가의 손은 편안한 운명을 갖지 못한다. 어떤 소설가는 오랜 시간의 타이핑으로 인해 손가락 끝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오는데도 이야기를 끊을 수가 없어서, 볼펜을 양손에 들고 자판을 눌러댔다고 한다.

지난달 북콘서트 행사장에서 소설가 김훈 선생의 손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평생 펜을 놓지 않은 손이다. 그 동안 작품을 통해 읽어온 인간에 대한 연민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이 그 손에서 느껴졌다. 그날 선생의 강연을 들으며, 우리 시대가 짊어진 문제들에 대한 답이 이렇게도 간결하고 명료하게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아주 놀랐다. 진실은 결코 복잡한 변명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수많은 생각의 주름에서 뽑아낸 한 줄의 언어,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작가의 손은 독자의 손과 무엇이 다른가. 그 손은 평범한 우리가 느껴본 적 없는, 인간세상이라는 늪지대의 밑바닥을 휘저어본 손이다. 또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는 가장 시원한 샘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아주 긴 팔 끝에 달린 손이다. 그 덕분에 독자는 정신의 목마름을 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작가는 분명 우리 독자들이 가 닿지 못하는 세계에 손을 뻗어본 사람이다. 그 깊은 곳까지 내려가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영혼의 발바닥은 수시로 박히는 가시를 감내해야 하고, 깊이 들어갈수록 숨을 쉬기 어려운 고통도 이겨내야 한다.

시대의 기쁨과 슬픔은 작가의 손에 고스란히 담긴다. 개인의 아픔이 작가의 손을 통해 시대의 아픔이 되기도 한다. 많은 작가들이 나라에 큰 아픔이 있을 때면 쓰던 글에 기약 없는 쉼표를 찍었었다. 그 쉼표가 말줄임표가 되어 더 이상 작품을 써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작품이 더욱 뜨거워진 경우도 많았다.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이나 김탁환 소설 ‘목격자들’ 등이 그 격랑 속에 더 높이 돛을 올린 작품들이다. 문학은 스러지고 잊혀져 가는 인생을 복원하는 작업이며, 작가는 그 인생이 뜨거운 불 속에 있든 깊은 물 속에 있든 따지지 않고 뛰어들고 보는 사람이다.

손가락이 생명인 음악 연주자의 경우 그 손을 보험에 들기도 한다. 손에 박힌 가시를 빼면 그 틈으로 진실이 한 방울이라도 새나갈까 가시도 빼지 않는 작가의 손은 우리 독자들이 보험을 들어줘야 한다. 바로 독서라는 보험이다. 그 보험은 우리의 정신이 무너질 때 유용하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일은 서로에게 좋다. 작가는 독자로부터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를 받아 담고, 독자는 작가를 통해 평소 멀리했던 인간 내면의 소리에 다시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된다. 책을 더 진하게 읽고 싶다면 북콘서트에 가서 작가와 눈을 마주치며 그 손을 마주 잡아보기를 권한다. 작가의 손은 보다 큰 울림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만든 노래 일부를 불러본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 되기에 모든 식품 중에 가장 공업적인 라면, 파와 달걀이 있어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만한 음식이 된다. 라면을 끓이며 생각에 잠긴다. 기억 속 아득한 유년의 맛. 한눈을 팔다가 끓어 넘친다. 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다.” 조금 다르게 불러 봐도 좋을 것 같다. “비록 삭막한 생의 맛을 보며 살고 있지만 작가의 손이 건네는 한 줄의 문장이 있어 덜 쓸쓸하게 살 만하고 견딜만한 세상이 된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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