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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햇살의 포근함을 닮은 가게, 고로케야

입력
2016.05.0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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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저씨.”

“어, 그래. 어서 와.”

포근한 어느 봄날, 한 여자아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진분홍 원피스를 입은 그 아이는 고로케 하나를 주문하더니 능숙한 솜씨로 냉장고의 탄산음료 캔 하나를 집어 들며 가게 주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이 옷 어때요? 너무 예쁜 옷이라 오늘 학교에 입고 다녀왔는데, 좀 더웠어요.”

“그래, 오늘은 그 옷을 입기엔 좀 더웠겠구나.”

작은 가게 안을 낭랑하게 울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요망져 보여서 나도 말을 걸었다.

“몇학년이니?”

“2학년이요. 2학년 되니까 늦게 끝나는 날도 있고 시험도 있고, 힘들어요.”

“이 집 아저씨가 만들어 주시는 고로케 참 맛있지 않니?”

“네, 맛있어요.”

내가 주문한 고로케와 아이가 주문한 고로케가 함께 나왔다. 내가 앉은 테이블 위에 고로케를 얹은 접시를 내려놓으면서 주인아저씨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서 먹고 갈거니?”

“아이 참, 아까 제가 포장해간다고 말했잖아요.”

아이는 시원한 탄산음료 캔을 만지작거리다가 고로케를 담은 종이봉투를 건네 받더니 주인아저씨에게 인사를 꾸벅 했다. 그러고는 바깥의 포근한 봄 햇살 사이로 총총거리며 사라졌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일하시는데, 학교에서 먼저 돌아오는 아이 간식을 제게 부탁하시더라고요. 고로케는 매일 하나씩, 음료는 이틀에 하나씩 말이예요.”

“예전에 말씀하셨는데, 아이들끼리 지나가다 들러서 한 두 개씩 먹고 간다면서요? 저렇게 아이들 간식도 부탁 받고 하시는 걸 보면 동네에서도 인정받는 가게가 된 거 같네요.”

1,500원짜리 고로케 하나를 건네 들고 가는 아이의 모습과 주인아저씨의 모습은 어딘가 많이 닮아 있었다. 여느 골목길 풍경이나 다름없는 창 밖 동네 길가엔 포근한 봄 햇살이 가득했다. 포슬한 질감 가득 느껴지는 따뜻한 공기와, 방금 포크로 조각낸 고로케 안의 포슬하게 으깨진 감자도 왠지 잘 어울렸다. 온화하고 순수한 표정 한아름 건네시던 주인아저씨는 다시 주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작고 아담한 가게 안에 가득 찬 따스하고 부드러운 무언가를 느끼며, 나는 점심으로 고로케 두 덩이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벚꽃 흩날리던 벚나무들은 이제 초록 이파리들로 제 몸을 무성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햇살이 좋아 점심시간 산책길에 나섰는데, 현무암 검은 돌담에 손을 대어보니 조금 뜨거웠다. 봄은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완연한 봄의 시간은 점점 귀한 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완연한 봄날에 맛보는 고로케는 따스함이라는 어떤 기분으로 잘 어울렸다. 포근한 봄 햇살, 온화한 아저씨의 미소, 알맞게 튀겨진 튀김옷을 가르면 포슬하게 으깨지는 감자 또는 다진 고기…

작은 공간을 잠시 낭랑하게 울리고 사라진 아이의 요망짐은 자칫 나른해질 수 있는 기분을 깨워주는, 상큼한 레몬수 같았다. 시간이 은근하게 내려앉은 여느 동네 골목길 모퉁이, 그냥 지나쳐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작은 공간 안의 따스함, 고로케야는 그런 동네가게이다

전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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