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일일이 뜯어 읽기도 벅찰 만큼 글쓴이들이 보낸 책을 받아 읽었다. 이미 옛일이 되었다.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물다고 생각하며 사는 지금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는 신생 출판사의 책과 가까운 사람들이 출간한 책이 간간이 배달되는 정도. 최근엔 오랜만에 두 권의 저자 사인본을 받았다. 한 권은 한 문학평론가의 책인데, 그의 글을 재미있게 읽고는 있으나 만나본 적 없는 대선배이기에 사인까지 있는 책을 받고 적잖게 놀랐다. 책을 앞에 놓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얻은 결론은, 내가 글빚이 있는 그 출판사의 기증자 명단을 보고 그분이 일괄적으로 써서 보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다른 한 권의 책은, 후배 시인이 보낸 시집이다. 앞의 대선배가 받을 사람의 이름과 보낸 사람의 이름만 써서 보낸 것과 달리 그는 두 문장을 덧붙여 보냈다. 선배 시인인 나의 시 세계에 대한 호감을 나타내는 문장이었다. 옛날 같으면 한 번 피식 웃고 말았을 그의 글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은, 요즘엔 책을 보내주는 사람도, 그 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귀하기 때문일 듯하다. 역시 만난 적 없는 그의 시집은 내가 쓰는 시들처럼 우울했지만 그만의 시적 개성으로 꽉 차 있었다. “내 곁에서 울면서 슬픔에 수긍하려고 고개를 주억거렸던 당신”이 있었던 그의 시들이 그를 나날이 근사한 시인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며 머리맡에 두고 천천히 읽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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