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와 1년5개월 머리 맞대
불량률 크게 줄여 2억원 절감
4230억 대출 펀드 조성하고
중소기업 R&D 과제 지원도
경북 칠곡군의 철강가공설비제조업체 대화산기는 포스코의 1차 협력업체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강소(强小)기업이다. 하지만 코일 형태로 둘둘 말린 철강 제품을 풀고 되감는데 사용하는 장비인 ‘리코일러’에 문제가 생겨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었다. 품질 검사를 위해 코일 제품을 풀었다가, 다시 리코일러를 사용해 감는 과정에서 제품에 스크래치가 생기거나 품질 결함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함이 심할 경우에는 애써 만든 코일 제품이 불량품이 됐고, 이런 문제로 인해 일부 제품은 아예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대화산기에서 제작한 이 장비를 납품 받아 사용하는 포스코도 제품 생산과정에서 애를 먹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두 기업은 2013년 2월 힘을 모아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2014년 7월까지 1년 5개월간 리코일러의 품질을 개선하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을 절반씩 나누는 ‘성과공유제’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두 업체의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리코일러의 부품 중 얇은 철판을 일정한 각도로 감아주는 ‘그리퍼’라는 고정설비의 각도 설정 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계속된 연구 끝에 철판을 감을 때 가장 적합한 각도를 찾아냈다. 그 결과 스크래치가 25㎜ 가량 발생하던 것을 9㎜ 이하로 대폭 줄여 품질 결함을 최소화했다. 덕분에 제품 불량률이 크게 감소했고, 그 동안 생산을 중단했던 제품 중 일부는 다시 생산이 가능해졌다. 포스코는 설비 개선 효과로 얻은 이익 약 2억2,000만원 중 절반인 1억1,000만원을 지난해 말 대화산기에 지급했다. 또 성과공유제 과제 종료 후 만족도와 신뢰도가 높아진 대화산기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국내 철강업계 1위 기업인 포스코는 협력사와 중소ㆍ벤처기업의 지원을 통해 동반성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포스코는 1959년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고안해 주요 글로벌 기업들로 확산된 성과공유제를 국내 처음으로 2004년 도입한 ‘선구자’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원가 절감, 품질 개선, 생산성 향상, 신기술 개발 등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해 양사가 공동 연구한 뒤 그 성과가 나타나면 이를 사전에 합의한 대로 현금 보상, 장기 계약, 판매수입 공유, 공동 특허 등의 방식으로 나누는 제도를 뜻한다. 포스코가 생산 혁신을 위해 자발적으로 도입한 이 제도를 2005년 국내 4대 그룹이 시행하기로 하면서 큰 반향이 일어났고, 2006년에는 관련 법 조항이 신설됐다. 성과공유 확인제도를 총괄하고 있는 동반성장위원회에 따르면 성과공유제는 올해 4월 현재 대기업 85곳, 중견기업 103곳, 공공기관 49곳 등 모두 237개 기업이 시행 중이며, 이 기업들이 설정한 7,533개 과제 중 2,857개가 완료됐다. 포스코는 지난해까지 전체 과제의 17.1%인 489개를 완료하는 두드러진 성과를 냈고, 수익으로 발생한 367억원을 협력업체에 보상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일찍부터 철강산업 생태계의 선순환 체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주목해 도입한 성과공유제가 이제는 국내 전 산업계로 확산됐다”며 “포스코의 성과공유제는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가 발간한 ‘깨어있는 자본주의’에 소개되는 등 국내외에서 성공적인 상생 경영 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2차 협력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달 원료ㆍ설비ㆍ자재ㆍ외주 관련 884개 협력기업 대표와 ‘2016 포스코그룹 공정거래 협약’을 맺으며 시중 금리보다 1%포인트 이상 저렴한 4,230억원 규모의 대출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는데, 그 중 800억 원은 2차 협력기업이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가 협력사들과 힘을 모아 상생하면 현재의 글로벌 경제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스코는 7년 전부터 중소기업에 연구개발(R&D) 지원도 하고 있다. 2009년부터 중소기업청과 기금을 조성해 자사에 필요한 중소기업의 R&D 과제에 개발비를 지원하고, 개발에 성공하면 일정기간 구매를 보장하는 ‘민관공동투자 기술개발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울산에 위치한 중소기업 싸이언과 손잡고 음파분석 기술을 활용한 제철소 설비 모니터링 기술을 개발한 게 대표적인 예다. 포스코는 제철업의 특성상 하루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면서 설비 이상 유무를 항상 점검해야 하는데, 진동을 감지해 점검하는 기존 방식은 회전 속도가 낮은 저속 설비나 회전수 변동이 심한 가변속 설비의 이상 진동을 알아내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싸이언은 2014년 7월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기술개발에 착수, 시끄러운 공장에서 주위 소음을 차단해 특정 이상음만 감지ㆍ분석하는 기술을 적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포스코는 2011년부터 우수한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기업을 선정해 투자자에게 연결해주거나 직접 투자하는 프로그램 ‘아이디어 마켓 플레이스’를 실시하며 창업 기반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를 통해 포스코는 현재까지 112개 회사를 육성했다. 그 중 포스코가 약 73억원을 직접 투자한 44개 회사는 투자 시점 대비 매출이 42%(157억원→224억원) 성장했고, 375명의 고용 창출이 발생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