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네 번째 미국 순방 마쳐
이옥선, 강일출 할머니 동행
힘든 일정 견디며 日 만행 고발
예일대 강연 400여명 몰려
“미국엔 홀로코스트센터만 51곳”
“아르메니아 학살 기림비도 있어”
“한일합의안 발표 이후 위안부할머니들의 상실감이 큽니다. 외국에서도 합의가 됐다면 문제가 해결된 거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옵니다. 안되겠다 싶어 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해외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달 8일부터 25일까지 군위안부 피해 할머니인 이옥선(90) 강일출(89)씨와 영화 <귀향>의 조정래(43) 감독을 모시고 미국 순방길에 나섰던 안신권(55) 경기 광주 나눔의 집 소장은 뜨거운 현지 반응에 희망의 끈을 잃지 않았다. 2013년부터 방문에 나섰으니 벌써 4번째다. 방문 지역을 늘리고 영화상영, 할머니 그림 전시회 등 내용도 내실 있게 꾸몄다.
안 소장은 “군 위안부 문제는 해결이 안됐고 피해자들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라면서 “용어도 일본이 만든 위안부(comfort women)가 아닌 성노예(sexual slavery)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동행한 이옥선, 강일출 할머니도 놀라운 에너지를 뿜어냈다. 광주 나눔의 집에서는 잔병치레도 많고 식사도 조금밖에 안 하던 분들이 군위안부 피해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식사도 정량 이상 들고 빡빡한 일정에도 힘 든다는 소리 한 번 안 했다. 오히려 큰 목소리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해 장내를 숙연케 했다.
예일대 로스쿨 강연에는 400여명의 방청객이 몰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영화 <귀향>의 상영을 더 늘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조 감독은 이 같은 요청에 일정에도 없는 애틀랜타로 날아가 <귀향>을 특별 상영하기도 했다.
안 소장은 “미국 전역에 독일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홀로코스트 센터가 51개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면서 “전쟁범죄, 여성인권의 문제인 군위안부 관련 기림비나 소녀상을 미 전역에 설치하고 알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곳곳에는 아일랜드 대기근 때 영국의 외면, 미국 노예제, 인디언 학살,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 등 기림비가 곳곳에 있다”면서 “우리도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설치해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안 소장은 이를 위해 나눔의 집 지부를 미국에 설치하고 후원회를 통해 안정적 운영을 꾀하는 게 새로운 목표가 됐다. 지난해 애틀랜타와 뉴욕 지부를 결성했고 올해 댈러스 지부를 신설했다. 회원수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고 후원액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부금이 많은 도움이 되는 만큼 국민MC 유재석씨의 사례는 귀감이 되고 있다. 2014년 방송 촬영 차 나눔의 집을 방문한 유씨는 프로그램 우승상금을 기부한다고 약속한 뒤, 우승을 못했지만 사비를 털어 지금까지 1억1,000만 원을 기부했다.
유씨 등이 낸 기부금과 경기도, 광주시의 예산 지원 등으로 추모관과 추모공원, 유품기록관 등이 이달 중순 착공될 예정이다. 조정래 감독과 상의해 나눔의 집 아래쪽에 <귀향> 세트장 설치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나눔의 집에 있는 10명의 할머니 중 증언이 가능한 할머니는 현재 3명 정도다.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 일본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야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태를 볼 때 기대난이다. 그래서 안 소장은 시간 끌기에 나서고 있는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라는 반인륜 범죄에 대한 단죄경험이 있고 인권운동이 활발한 미국에 기림비, 소녀상을 설치하는 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일본 정부가 미국의 평가에 예민하다는 점도 감안했다.
안 소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 여성들의 수난사가 아닌 여성 인권에 관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미국 주류사회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동포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나눔의 집에는 독일, 일본, 미국, 영국 등지의 학생들로부터 인턴십을 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그만큼 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각됐다는 방증이다. 장소가 협소하고 통역 등의 문제로 다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고무적인 현상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15년째 나눔의 집을 지키고 있는 안 소장은 “아직도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냉대가 있다”면서 “특히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로부터 동의조차 받지 않아 행복추구권,?알권리, 재산권,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한 만큼 반드시 철회시키겠다”고 말했다.
나눔의 집의 외연도 확대되고 있다. 나눔의 집이 군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쉼터에서 여성 인권 피해자 전체의 대변기관이 되는 것이다. 일제 징용ㆍ징병 피해자 자녀, 사할린 동포, 파독 간호사, 성폭력피해자 등 쉼터가 필요한 모든 여성이 대상이다.
안 소장은 “힘들 때 마다 가장으로서 제대로 역할도 못하는 나를 끝까지 믿고 지원해주는 아내를 떠올리며 힘을 낸다”면서 “군 위안부라는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이범구 기자 eb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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