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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난 물은 배를 뒤엎는다

입력
2016.05.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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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모임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연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옥시 제품을 발로 밟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시민들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모임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연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옥시 제품을 발로 밟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시민들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연합뉴스

“저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식을 잃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아타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법인 대표는 지난 2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 이렇게 말했다. 5년이나 늦은 형식적 사과란 지적이 많았지만 그 동안 취재진의 전화에 응답조차 하지 않던 옥시레킷벤키저가 기자회견을 한 것은 분명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엔 김상현 홈플러스 대표도 “피해자 가족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진심 어린 유감과 안타까움을 전한다”고 밝혔다. 본사를 등촌동으로 이전한 뒤 경영 전략을 발표하는 간담회 자리에서 기자들 질문이 나오자 등 떠밀려 한 말이지만 홈플러스가 사과를 한 건 처음이었다.

사실 가습기 살균제 사과는 롯데마트가 먼저였다.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는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을 자청, 자체 상품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사용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보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한 게 아니라 검찰 수사가 임박하자 갑자기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전시성 사과를 한 것이지만 사과의 물꼬를 튼 의미는 있었다.

수십만명의 피해자를 낸 살인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 이들은 국민적 분노에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원공급자인 SK케미칼도 검찰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책임지는 기업으로서의 대책을 내 놓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된 이들이 모두 사과를 하고 있지만 유독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고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정부다. 누구보다 책임이 큰 정부는 부처마다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 이윤 극대화가 목표인 기업이야 본성이 그렇다고 치자. 공무원은 이러한 기업의 생리가 공중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규제하고 단속하는 게 임무다. 그런 일을 성실히 수행하라며 국민들은 국가에 세금을 낸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을 죽이는 제품이 시중에서 팔리도록 허가해 놓고도 아직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책임지는 이도 한 명 없다. 수백명의 사망자(95~239명 추정)가 발생했는데도 정부 당국자는 아무도 잘못이 없다는 얘기다.

사과를 모르는 정부는 다른 곳에서도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 대표적인 게 대우조선해양 문제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등은 대우조선해양에 1989년 4,700억원, 98년 6,600억원, 2000년 1조1,700억원(출자전환), 2015년 4조2,000억원 등 그 동안 무려 6조5,000억원을 지원했다. 사실상 국민들 부담인 공적자금 성격의 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혈세를 회수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 등의 낙하산 자리를 위해서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지 않고 연명시킨 것 아니냔 비판도 없잖다.

망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이 회사는 터무니 없는 저가 수주로 결국 조선업 전체를 망가뜨리는 데도 일조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 들었다가 물러난 한 기업 관계자는 “실제로 속을 들여다 보니 절대 인수하면 안 될 회사였다”고 귀띔했다. 민간에선 이미 2000년대 후반 포기한 기업을 정부는 계속 밑 빠진 독에 물붓기를 한 셈이다. 제 돈이면 그렇게 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다섯 번째 물 붓기를 감행할 태세다. 국민들 사이에선 이제 ‘검찰 수사’나 ‘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정부가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 것은 국민들을 우습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가 여전히 한국 소비자들에게 고자세인 이유와 같다. 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를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 박일근 산업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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