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율협약 한 발 앞서 돌입
용선료 협상도 마무리 단계
유동성 확보에 해운동맹서도 유리
고려해운 30년 연속 흑자 등
알짜 중견사 건실한 경영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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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한달 만에 엇갈린 희비’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해운업계에선 지난해말부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 경우 한진해운의 현대상선 흡수합병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졌다. 현대상선의 ‘내상’이 한진해운보다 심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뚜껑이 열리자 한진해운의 갈 길이 현대상선보다 더 험난할 것이란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8일 금융권과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두 선사 모두 조건부 자율협약 상태에 놓여 앞날을 장담할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는 먼저 자율협약에 돌입, 용선료 협상을 벌여 온 현대상선의 전체적 여건이 한진해운보다 나은 상황이다.
먼저 총 차입금 규모에서 한진해운이 5조6,000억원 안팎으로 현대상선(약 4조8,000억원)보다 많다. 산업은행 등 금융권 차입금 비율도 한진해운이 현대상선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낮다. 자율협약에 참여하지 않는 비 금융권의 차입금이 많다는 것은 채무조정 시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두 선사의 운명을 가를 해외 선주들과의 용선료 협상에서도 현대상선이 앞서가고 있다. 자율협약 개시 전부터 협상을 시작한 현대상선은 이미 22곳의 선주 중 대부분과 협의를 마무리, 이달 안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한진해운은 이제부터 협상을 시작, 3개월의 시한 안에 마쳐야만 한다.
이미 많은 자산을 내다 판 한진해운은 추가 유동성 전망도 어둡다. 선박과 해외 상표권 매각 등이 포함된 추가 자구안으로 끌어 모을 수 있는 금액은 약 5,4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와 달리 현대상선은 부산신항만 지분과 벌크선 사업부를 팔아 2,000억원, 현대증권 매각으로 대출 상환금을 제외하고도 9,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중국계 해운동맹 오션얼라이언스의 출범으로 급변한 국제 해운동맹에서도 현대상선의 위상이 유리하다. 새로운 동맹 개편의 키를 쥔 독일 하팍로이드와 현대상선은 현재 같은 G6 소속이지만, 한진해운이 속한 CKYHE는 공중분해될 처지에 놓였다.
여기에 한진해운은 ‘오너리스크’도 극복해야 한다. 현대상선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재 300억원 출연으로 일단 여론의 포화를 피했지만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자율협약 신청 전 주식 전량 매각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 출연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해운업계 1,2위 양대 국적 선사가 모두 자율협약으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반면 알짜 중견 해운사들은 건실한 경영으로 흑자를 내고 있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해운업이 불황이라고 해도 고려해운은 지난해 45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30년 넘게 흑자를 이어갔다. 장금상선 폴라리스쉬핑 H라인해운 흥아해운 등도 흑자를 달성했다. 지난해 하림이 STX에서 인수한 팬오션은 전년 대비 7.1% 증가한 2,29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물동량이 많은 아시아 시장에 집중하며 비용 낭비가 큰 정기선보다는 부정기선 위주로 영업한 게 수익의 비결로 풀이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운임이 떨어지기 전 장기 운송 계약을 체결한 것도 효과적이었다”며 “이제 해운도 몸집 보다는 내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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