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동안 신문 외길을 걸으며 한국언론에 큰 영향을 미쳐 온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이 8일 오전 11시 7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1928년 1월22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소학교 교사 방재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가계는 신문과 무관했다. 고인의 작은할아버지인 계초 방응모가 금광사업으로 거부를 이룬 뒤 1932년 경영 상태가 곤란했던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신문사업은 가업이 됐다. 고인은 아버지가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의 양자가 되면서 훗날 조선일보 회장을 역임한 형 방일영과 함께 방 전 사장의 양손자가 된다.
고인은 경신고와 연희전문대 상과를 각각 졸업한 뒤 1952년 조선일보 공무국에 견습사원으로 입사하며 신문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편집국 교열부와 사회부, 경제부에서 기자로 8년 동안 활동하다가, 조선일보 계열사였던 아카데미극장을 2년 동안 경영했다. 아카데미극장에서 경영수완을 인정 받은 그는 62년 상무로 조선일보에 복귀한 뒤 전무와 대표이사, 사장, 회장을 거치며 조선일보의 성장을 이끌었다. 고인이 경영에 참여할 당시 빚더미에 앉아있던 조선일보는 그의 지휘를 바탕으로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 고인은 1993년 방일영 전 회장의 아들인 방상훈 현 조선일보 대표이사 사장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줬고, 2003년엔 회장에서 명예회장이 되며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2010년엔 상임고문이 됐다. 고인은 연세대 재단이사장과 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연세대 명예동문회장, 대한골프협회 명예회장, 한독협회 명예회장 등도 지냈다.
고인이 2008년 낸 저서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 따르면 고인은 40여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다. 대학시절에 복싱부 활동을 한 만능스포츠맨이었고, 늘 책을 끼고 산 독서광이기도 했다. 고인은 책에서 독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의 압박, 김대중 정부의 세무조사 등으로 겪은 경영의 어려움을 상세히 털어놓아 눈길을 모았으나 80년대 정치권력과의 유착 의혹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지난 1월에는 88번째 생일을 기념해 김종필 전 총리와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등 국내 명사 90명이 쓴 문집 ‘신문인 방우영’이 출판되기도 했다. 이 문집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방우영 사장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차돌을 생각했다. 그는 젊은 시절 내 가슴에 불을 일으키는 부싯돌이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선영씨, 아들 성훈(스포츠조선 대표이사 발행인)씨, 딸 혜성·윤미·혜신씨, 사위 서영배(태평양개발 회장)·정연욱(경남에너지 대표이사 부회장)씨가 있다. 빈소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1호실 (02)2227-7500. 발인 12일 오전 8시. 장지 경기 의정부시 가능동 선영.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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