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왕국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ㆍ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발행ㆍ384쪽ㆍ1만4,000원
‘그림이 살아있다’는 것이 아주 새로운 상상력은 아니다. 멀게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부터 가까이는 해리 포터에 나오는 그림 속 유령들까지. 혹은 어떤 장치를 통해 현실세계가 아닌 ‘이세계(異世界)’로 이동하게 되는 트립물도 이 장르에서는 고전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인 ‘미미 여사’ 미야베 미유키가 그림 속으로 사라진 소년 소녀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자 한국에서는 ‘모방범’과 ‘화차’등으로도 유명한 저자의 신작 소설이다. 어느 겨울 쓸쓸한 공원을 산책하던 중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주제를 떠올리고 써내려 간 작품이다.
주인공 오가키 신은 어느 날 신비로운 고성이 그려진 스케치 한 장을 줍게 된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생명력에 매료된 소년은, 고성 옆에 자신의 분신을 그려 넣으면 그림 속 이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성의 탑 속에 갇혀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신은 왕따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소녀 시로타 다마미를 동료로 택해 그림 속 모험을 시작한다.
살인 사건과 실종 사건이 단골 소재이던 추리 소설의 여왕이 쓴 일종의 ‘청소년 소설’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미미 여사의 솜씨 그대로다. 청소년을 통해 사회 모순과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작가의 예리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왕따와 아동학대라는 민감한 주제를 SF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감각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책의 첫 장을 펼쳐 본격 모험담을 시작하기 이전에, 책의 표지가 먼저 눈길을 잡아 끈다. 노란색 한국판 표지와 함께 비닐에 덧씌워진 표지가 한 장 더 따라왔다. 마트의 ‘1+1’ 상품도 아니고, 표지를 2장씩이나 선물해준 출판사의 변은 이러하다.
일본 고등학생이 심심풀이 삼아 ‘겨울왕국’을 칠판에 그려 트위터에 올렸고, 순식간에 불꽃같은 리트윗을 통해 각종 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며칠 후 출판사에서 미미 여사의 신간 표지 작업을 의뢰했고, 그 고등학생은 책을 다 읽은 뒤 다시 칠판 그림을 그려 화제가 됐다. 이 멋진 원서의 표지 디자인을 포기할 수 없었던 한국 출판사가 이 원서 표지 디자인을 한정판으로라도 증정용으로 들여온 것이다.
훌륭한 1차 텍스트는 풍부한 2차 텍스트들을 생성해내고, 늘 원작만큼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몰고 다닌다. 유명한 저작물을 패러디해 만드는 ‘동인지 만화’는 이미 자체 시장을 갖고 있을 정도다. 오도카니 홀로 존재했다 사라지는 작품들에 비하자면, 이러한 작품들의 생명력은 아마도 더 질길 것이다. 소설 속 등장하는 그림만큼이나, 소설의 생명력이 생생한 이유다.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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