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권수영 외 7인 지음
21세기북스 발행ㆍ252쪽ㆍ1만6,000원
‘헬조선’만큼 뼈아프게 한국의 국가정체성을 후벼 판 신조어가 또 있을까. 극단적으로 자조적이나 지나칠 정도로 유용해 일상을 파고든 단어. 이 헬조선 담론의 중요한 줄기 중 하나는 이 땅에 함께 발 디딘 이웃들이 죄다 전근대성을 듬뿍 지닌 모순적 존재인 것 같다는 비애에 있었다. 거리에서 반공을 부르짖어 세월호 진상규명을 호소하는 유족들의 목소리를 제거하는 자칭 ‘어버이’들, 외국인을 만나면 이름보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를 먼저 묻는 사람들, 유독 세계 정신과 의사 필독서에 문화특유증후군으로까지 등재된 화병(Hwa-byung)에 시달리는 국민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는 ‘우린, 이 나라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럴 수 밖에 없을까’란 의문에 답하는 책이다. 역사, 사회, 종교, 미학 등에 기반을 둔 학자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돌아봤다. 플라톤 아카테미가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연 동명의 강연내용을 글로 엮었다.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는 인문학 지원단체로 2013년부터 개인의 삶, 죽음 등에 관한 인문학적 해법을 모색하는 강연 등을 열었다.
책의 1부는 한국인 만의 독특한 정서를 형성한 역사를, 2부는 세계 권력 교체를 앞둔 시점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모습을 다룬다. 이를 테면 미학자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근현대사 주요 대목 등을 훑어가며 한국적 인간 ‘호모 코레아니쿠스’의 특징과 형성 과정을 논한다. 그는 “남북한 모두 지배 계층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정치적 근대화를 보류”하면서 우리가 반쪽자리 근대화를 이뤘다고 본다. 근대적 인간이란 “깨끗하고 근면한, 국가와는 구별되는 자율적 인간”이나 우리에겐 이런 인간상이 요구된 적이 없단 얘기다.
“남북한의 산업화는 근대화보다는 ‘군대화’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산업화 시대에 국가가 요구하는 인간의 유형은 단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산업 전사’입니다. 외화 벌이에 힘쓰는 수출 역군이 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반공 전사’입니다.”
인류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는 고도 압축 근대화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고민한다. 그는 “시장적 독점에 익숙해진 마음과 몸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을 최대 과제로 제시한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강연 내용을 풀어낸 만큼 글들은 묵직하기보단 가볍게 읽힌다. 필자들의 배경이 다양해서 일부 대목에선 지나친 ‘우리 것 예찬’이 거북할 수 있지만, 적잖은 대목에서 고민해 볼만한 ‘한국적 인간’의 모습을 여과 없이 불러내 흥미롭다.
이들의 분석을 관통하는 제언은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한 지금이야 말로 차분히 우리를 돌아볼 시점이란 것이다. “턱없이 우리 스스로를 미워할 필요도 없고, 자기 비하에 빠질 이유도 없습니다.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이 이루어낸 성취와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 본 뒤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생산적 방법이라고 봅니다.”(진중권)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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