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예전에 삼시세끼 해먹던 사람이야.” 배우 이서진(45)은 지난달 24일 종방한 MBC 드라마 ‘결혼계약’에서 극중 연인으로 나온 걸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유이에게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보겠다”며 고기를 구워준다. 이서진 자신이 출연했던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를 드라마 속에서 직접 언급해 재미를 준 것이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서진은 “그 대사는 애드리브”라며 웃었다.
‘결혼계약’ 안에는 ‘삼시세끼’가 살았다. ‘삼시세끼’에서 같이 밥을 지어 먹었던 배우 김광규가 드라마 속에서 이서진의 친구로 나왔다. 둘은 드라마에서도 현실처럼 티격태격하며 웃음을 줬다. 이 설정은 ‘삼시세끼’를 연출했던 나영석 PD의 농담에서 시작돼 현실이 됐다. 이서진은 “나 PD가 (김)광규 형이랑 나랑 쌍둥이 형제로, 그것도 광규 형이 내 동생으로 나오는 시트콤을 찍어 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이 얘길 우연찮게 드라마 제작진과 나눴는데, 그 뒤 광규 형이 대본에 내 친구로 나와 있더라”고 제작 뒷얘기를 들려줬다.
“유이 남자친구 알았으면 키스 못 했을 지 몰라”
제작진이 깔아 준 멍석에 이서진은 그간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않은 장난기를 마음껏 분출했다. 이서진이 김광규를 향해 던진 “제 정신이야?” “맞을래, 죽을래?” 등의 대사와 주먹질을 하는 모습도 그의 장난에서 시작된 즉흥 연기란다. ‘다모’(2003)를 비롯해 ‘불새’(2004) 등의 드라마에서 차갑고 무뚝뚝한 사내로만 나왔던 이서진의 반전이다.
“그 동안 밝은 역할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웃으며 촬영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네요. ‘삼시세끼’ 속 제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에 갖고 가려는 의도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익숙해하는 모습을 드라마로 끌어와 자연스러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기존에 알던 캐릭터에서 갑자기 180도 돌변하면 오히려 낯설고 몰입이 안 되잖아요. 제 연기론은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캐릭터를 내 안으로 끌어와 내 색으로 만들자 이거든요. 드라마 ‘이산’에서 정조 이산 역을 할 때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제 말투로 연기한 것도 같은 이유고요. 물론 이병훈 PD님의 요구도 있었지만, 저도 그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거든요.”
싱글맘으로 죽음을 앞둔, 드라마 속 유이와의 절절한 사랑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유이의 멱살을 잡은 뒤 격정적으로 입을 맞춘 키스 장면은 방송 내내 화제였다. 이서진은 “유이가 그만큼 편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이었다.
“유이가 제겐 마냥 귀여운 여동생이거든요. 촬영장에 가면 살 좀 찌라고 하고 ‘밥 먹었어 안 먹었어’라고 다그치고요. 유이가 정말 살갑게 잘 따르거든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유이 멱살을 잡고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고요. 그러다 키스 장면 촬영에서 좀 특별한 걸 찾다가 평소에 둘이 하던 장난을 활용한 거죠. 유이에게 남자친구(배우 이상윤)가 있는 줄 알았다면 못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요. 하하하.”
‘결혼 계약’을 끝낸 이서진은 다시 ‘예능인’으로 돌아간다. 6일 KBS2 예능프로그램 ‘어서옵쇼(Show)’의 첫 방송을 앞두고 있어서다. 나 PD의 ‘꽃보다 할배’ 속 짐꾼으로 예능프로그램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그는 ‘삼시세끼’ 이후 ‘예능 블루칩’이 됐다. 서울은행장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자라 미국 유학파(뉴욕대 경영학 전공) 출신 ‘엄친아 배우’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까다롭긴 하지만 의외로 털털한 모습을 보여줘 친근함을 준 덕분이다. 다큐멘터리식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나 PD외에는 예능 작업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서진은 김수현이 나온 드라마 ‘프로듀사’ 등을 제작한 서수민 KBS PD의, 1년이 넘는 구애 끝에 ‘어서옵쇼’의 출연을 결정했다. 이서진 주변인들에 따르면 이서진은 낯을 많이 가린다. 이번 인터뷰도 ‘이산’ 이후 8년 만에 나선 자리일 정도로, 그는 자신의 노출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런 이서진에 연이은 예능 행보는 이례적인 일이다. 데뷔 후와 달리 연예 활동을 하는 데 심경 변화가 있어서는 아닐까.
“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예전엔 제가 얘기하는 걸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방송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직설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좋아하다 보니 예능과 다리가 놓아 진 것 같아요. 딱히 제 생각이 변한 건 아니고요. 다만, 많은 분이 오해하시는 부분은 있죠. 전 진지한 건 딱 질색이에요. 항상 작품도 어두운 캐릭터만 들어오는 데 저 어두운 거 싫어요. 밝은 사람 좋아하고요. 예민해 보이지만 스트레스도 잘 안 받는 스타일이죠. 안정환 씨랑 ‘어서옵쇼’ 촬영을 같이 했는데, 스트레스로 어깨 뭉쳐 본 적 한 번도 없다고 하니 놀라더라고요.”
“트와이스 빠진 승기에 싸인 CD보내… 나 PD 다음주 만나는데…”
직접 만난 이서진은 꾸밈이 없었다. 질문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미사 여구로 특별한 포장을 하지도 않았다. 노총각 배우에 다소 민감한 결혼 얘기를 조심스럽게 묻자 “에이 뭘요”라며 “최근 3년 간 너무 바빠 여잘 만날 시간도 없었지만, 이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아 걱정”이라며 너스레로 받는다. 같은 소속사 식구로 지난 2월 입대한 가수 겸 배우 이승기 얘기를 할 때는 정도 느껴졌다.
“(이)승기가 나이가 많은 상황에서 입대한데다 특전사로 가 걱정을 했는데 군 생활을 정말 잘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러다 말뚝 박을까 걱정이에요. 군인 체질이랄까요? 승기랑 전화를 했는데 요즘 걸그룹 트와이스에 푹 빠져 살더라고요. 그래서 ‘삼시세끼’에 출연했던 2PM 멤버 택연에게 트와이스 싸인 CD를 부탁해 그걸 받아 군에 소포로 보내줬죠, 하하하.”
이서진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요리’다. 그에게 요리 얘기를 꺼내자 “‘삼시세끼’ 후 요리를 더 안 한다”며 손사래를 친다. 다만, “요리를 하면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며 요리에 대한 욕심을 인정했다.
“‘어서옵쇼’에서 안 그래도 안정환 씨랑 요리를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재료 준비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말을 한 마디도 안 한 거예요. 정갈하게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방송에 신경을 안 쓴 거죠. 예전에 음식 맛도 모르고 주는 대로 먹었는데, 이젠 음식에 뭐가 들어갔네 같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먹어요. 그게 변화죠.”
나 PD와 이서진의 재회를 기대하는 시청자도 적지 않다. 나 PD와의 새 예능 계획을 묻자 “다음 주 만나기는 하는데”라고 예기치 않은 소식을 전했다. 돌발 예능의 가능성은 없을까. 이서진은 친동생처럼 지내는 나 PD 얘기가 나오자 거침 없는 입담으로 인터뷰 말미 웃음을 주고 일어섰다.
“‘어서옵쇼’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겠죠. 다음주에 만나기는 하지만 별거 있겠어요? ‘꽃보다 청춘’ 같이 갑자기 어디론가 끌고 가는 건 저한텐 안 통해요. 아니 안 가면 되지 그걸 왜 끌려가요. 제가 그 상황에 놓이면 나 PD한테 안 간다고 했을 거예요. 나 PD도 ‘그래서 형한테 가자는 소리도 안 해’라고 하더라고요.”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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