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데뷔했다. 그런데 해체가 예정돼 있다. 주어진 시간은 10개월. 11명의 멤버들은 그 안에 걸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꺼내 놓아야 한다. 음악전문 케이블 채널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서 새로 탄생한 그룹 아이오아이(I.O.I)의 운명이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데뷔 앨범 ‘크리슬리스’(Chrysalis) 쇼케이스에서 아이오아이 리더 임나영(21)은 “연습생 시절(4년 7개월)이 워낙 길어서인지 데뷔 자체가 더 간절했다”며 “10개월이란 소중한 시간에 좋은 추억을 쌓고 싶은 마음 뿐”이라며 맏언니다운 의젓함을 보여줬다.
시작과 동시에 끝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오아이 멤버들의 표정은 내내 밝았다. 임나영의 말처럼 기나긴 연습생 신분을 벗고 이제 당당히 대중 앞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듯했다.
걸그룹답지 않은 털털한 말투로 멤버들 중 가장 폭넓은 사랑을 받는 김세정(20)도 “활동 기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더 빈틈 없이 많은 걸 보여드리고 싶어 멤버들이 더 뭉치게 된다”며 특유의 시원한 눈웃음을 선사했다.
데뷔 앨범에는 타이틀곡 ‘드림 걸즈’(Dream Girls)를 포함해 ‘아이오아이’(Intro) ‘똑똑똑’ ‘두 왑’(Doo Wap) 등 4곡의 신곡과 ‘프로듀스 101’을 통해 잘 알려진 ‘픽 미’(Pick me), ‘크러쉬’(Crush) ‘벚꽃이 지면’ 등 총 7곡이 담겼다.
앨범 명부터 뮤직비디오, 랩 작사에 이르기까지 멤버 11명의 톡톡 튀는 의견들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번데기라는 뜻의 크리슬리스는 김세정의 아이디어다. 고되지만 추억이 깃든 연습생 시절을, 훨훨 나는 나비가 되기 전 번데기에 빗댔다. 임나영과 최유정(18)은 ‘드림 걸즈’의 랩 작사에 참여했다. 최유정은 “‘남들 시선에 포기는 노(No), 후회 안 해 자신 있어 나’라는 구절에 특히 애착이 간다”고 밝혔다. 임나영은 ‘조급해 하지마 뒤처지면 어때’라는 부분을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로 꼽으며 “연습생 시절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나를 다독인 말”이라고 전했다.
희망을 놓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간다는 타이틀 곡의 내용과 가장 부합하는 멤버인 듯한 김소혜(17)의 감회도 새롭다. 그는 방송 당시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실력으로 하위권에 속하다 끈질긴 연습으로 일취월장한 멤버란 평가를 받는다. 김소혜는 “워낙 기초가 안 잡혀 있어서 모든 게 힘들었다”면서 “데뷔를 앞두고 다른 10명의 멤버들이 하나같이 도와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없었으면 지금도 엄청 틀리면서 고생했을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해 ‘다이아’(DIA)란 걸그룹으로 데뷔했던 경험이 있는 정채연(19)은 “두 번째 데뷔라 빈틈 없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여전히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연습했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웃음기 넘치는 분위기 덕분에 이날 쇼케이스 현장은 여고생 교실을 방불케 했다. 서로의 매력을 꼽으며 깔깔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10대 소녀들이었다. 김세정은 중국인 멤버 주결경(18)을 가리키며 “한국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능숙한 한국어 실력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춤 실력이 뛰어난 김청하(20)에 대해선 “춤으로 유명하지만 노래를 정말 잘 한다”는 극찬이 이어지기도 했다. 김세정 차례가 오자 멤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재(아저씨) 세정”이라고 외치며 “‘이 자식아’ 같은 세정의 말투를 10명이 다 따라 할 수 있다”며 소리 내 웃었다.
시한부 걸그룹이란 냉정한 평가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손을 내젓는 모습이 10대답지 않게 어른스럽다. 아이오아이로 이루고 싶은 꿈도 조심스럽게 밝혔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단독 콘서트를 하는 게 목표예요.”(유연정) “연말 시상식에서 마지막 무대를 꾸며보고 싶어요. 물론 상도 받았으면 좋겠어요.”(전소미)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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