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20세기 세계 조선산업을 주름잡았던 국가 중 하나였다. 높이 140m, 무게 7,000톤에 달하는 코쿰스 조선사의 초대형 크레인은 스웨덴 조선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한국 등 신흥 조선 강국에 밀리며 코쿰스 조선사가 도산하고 인구 50만명에 달하던 도시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막대한 해체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1달러에 팔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크레인이 해체되어 울산으로 향하던 날, 스웨덴 국영방송은 TV에서 장송곡까지 틀며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해체 현장에 많은 시민이 나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말뫼의 눈물’이라는 말이 세간에 회자하기 시작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울산과 거제가 눈물을 흘리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최근 선박 수주 실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만으로 조선업의 몰락을 운운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중국 조선사들의 급성장세나 세계경제가 불황의 징후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회복의 여지가 높아 보이지도 않는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가 조선업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추진하는 중이라고 밝혔고, 조선업체가 많은 경남도 역시 조만간 ‘조선산업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 상황을 보면 완치 없는 연명치료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조선 경기 자체가 쇠퇴하고 있는 판에 국내 대책이 성과를 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세계 금융위기가 맹위를 떨치던 2008, 09년에도 조선업은 한 차례 큰 위기를 맞이했다. 때문에 당시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정책은 현상유지 성격이 강하므로 미래지향적 구조전환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에도 회생보다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던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이 권고를 무시했고, 결국 그 선택의 결과를 지금 받아 들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달랐다.
독일 조선업도 2008년 금융위기 때 5, 6개 대형조선소가 파산의 위기를 맞았다. 독일의 대표적 철강기업인 티센크루프(ThyssenKrupp)도 그 중 하나였다. 티센크루프는 선박용접공장을 풍력발전기 제조기업인 지악-샤프(Siag-Schaaf)에게 매각했고, 해당 공장은 풍력발전기 공장으로 전환됐다. 풍력산업 1위 업체인 덴마크의 베스타스 역시 덴마크 조선사를 주요 고객으로 하던 철강기계 업체였지만, 선도적으로 풍력산업으로 전환하면서 현재의 공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타이태닉호를 건조해 유명했던 영국 할란드 앤 울프(Harland and Wolff) 조선소는 풍력과 파력에너지 산업에 뛰어들었다. 게다가 2020년 이후 신기후체제가 본격화되면 풍력발전시장은 성장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전환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제 태동하고 있는 풍력발전산업이 거대한 조선산업을 모두 대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눈앞의 이익만 좇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눈물을 훔치던 조선의 도시, 말뫼는 그 후 어떻게 변했을까. 도시 자체가 슬럼화하던 말뫼는 재생가능에너지 지식산업의 메카로 변신을 시도했다. 또 ‘내일의 도시’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도시 내 모든 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바꾸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소득은 크게 증가했다. 세계 각지에서 말뫼의 변신을 보기 위해 찾아오고, 유엔환경계획은 2007년 북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말뫼를 선정하기도 했다. 말뫼가 눈물을 흘린 지 겨우 5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말뫼의 눈물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건 무엇일까. 결국, 변화란 시간의 결과가 아니라 의지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시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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