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별난 스님의 인기가 심상찮다. 수행하고 마음을 챙기라면서도 실수 연발에 장난꾸러기다. 수행자의 평정심은 어디 가고 왈칵 화를 내기도, 실눈을 뜨고 노려보기도 한다. 한 걸음 떼면 갸우뚱 넘어질 것만 같은 2등신 몸매의 동자승 캐릭터 ‘어라 스님’이다.
‘어라’를 만든 이는 대한불교 조계종 의정부포교원 포교국장 지찬(42) 스님이다. 자신의 그림을 블로그, 각종 교계매체에 연재하다 2014년 5월 젊은 작가들과 함께 불교 카툰 웹진 ‘만만(卍 卍)한 뉴스’를 창간해 본격적으로 ‘어라’를 주인공으로 한 카툰을 연재 중이다. 작은 일에도 늘 ‘어라?’하고 뒤를 돌아보듯 세상만사에 관심을 기울여보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청년 불자, 출가자의 감소가 최대 고민인 불교계에서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캐릭터는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의 이모티콘으로도 출시됐다. 지난해에는 조계종 총무원에서 ‘불교언론문화상’ 뉴미디어 부문상을 수상했다.
지찬 스님은 3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포교원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고수들이 그린 간단한 그림을 보곤, 쉬운 줄 알고 덤볐는데 그림 배우는 일 자체가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말했다. “기성 작가들 그림도 가만히 보면 알게 모르게 불교적 가치관을 담은 것들이 많거든요. 작가가 불자가 아닌데도. 그래서 저도 그림을 배워 일상에 수행자적 관점을 가지고 가치를 부여하고 제 마음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시작했는데 만만치 않았어요.”
그는 당초 “오로지 수행해서 마음 깨닫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해 예술 등 여타 세상사와 떨어져 선방에만 머무르던 평범한 수행자였다. “어느 날 막내 스님이 들고 온 고이즈미 요시히로의 ‘우리는 모두 돼지’란 만화책을 봤는데 말로도 하기 힘든 마음 이야기를 재치 있게 그려내 깊은 인상을 받고, 나도 이런걸 그려 소개하고 판매하면 대중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뒤 성신여대 사회교육원 만화창작 과정에서 늦깎이로 그림을 배웠고, 스님으로는 잘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캐릭터를 통해 해보자는 생각에서 동자승을 그려냈다. “실력이 아직 모자라요. 얼굴도 조금씩 변해서 이렇게 예쁘게 된 거에요. 초반엔 눈이 더 게슴츠레했어요.”(웃음)
‘어라’는 중학생 시절부터 출가를 꿈꾸던 스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평범한 삶이 반복되던 중학생 시절, “굳이 왜 매일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자살을 시도하러 올라간 독서실 옥상에서 문득 몰려오는 공포를 실감했다. 이 두려움의 이유, 삶의 목적, 본질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다 한 스님의 책을 읽고 출가를 결심했고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해 2003년 계를 받았다.
“스님들이 대중 앞에서 화 내거나 우는 일은 없잖아요. 완벽히 깨달은 상태가 아닐 때는 분명 내면의 문제들이 있는데 살림살이, 즉 공부 수준이 드러날까 잘 표현하지 못하죠. 하지만 캐릭터 ‘어라’는 희로애락을 가감 없이 표현해요. ‘흥칫뿡’하고 삐치기도 하고요. 이런 내면을 솔직히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이 제 스스로 수행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는 일이야 말로 수행 그 자체란 얘기다.
최근엔 카툰과 단상을 담은 ‘어라, 그런대로 안녕하네’(들녘)를 냈고,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을 누비며 겪은 이야기를 담은 ‘자전거를 탄 승려’, 일명 자탄승을 소재로 한 만화도 준비 중이다. 6~8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는 연등회 청춘마당 행사에서도 그림을 선보인다.
“아무래도 캐릭터 덕분에 청년들이 제게 좀 더 쉽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아직 초보단계지만 좀 더 따뜻하게, 더 유쾌하게 붓다의 가르침으로 가는 길을 안내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저 자신도 꾸준히 돌아보다 보면 언젠가 불현듯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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