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와 과일에 관한 한 나의 1인분을 당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푸성귀가 수북한 소쿠리를 바짝 끌어당겨 놓고 밥을 먹던 어릴 때부터 소처럼 먹는다는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반대로 육식에 관한 한 나의 1인분은 평생 거의 없다시피 했다. 편식 때문에 몇 번 혼이 난 뒤부터는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가족들도 잘 먹으라는 당부를 하다가 미덥지 않은지 아예 진공 포장한 소고기 따위를 가져다 준다. 1인분씩 포장된 고기는 늘 내게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이다. 1인분을 몇 번으로 나눠 먹다 보니 생고기가 냉동실로 들어가고, 이웃집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음식을 감성으로 대하는 내게 육식과 익히지 않은 생선은 언제나 불편하다. 그로 인해 나와 식성이 반대인 사람들이 채식할 때의 고충도 알게 되었다. 이 모두가 마음껏, 양껏 골라 먹을 수 있는 인간에게나 있는 일. 사람들이 당당하게 보신탕을 먹으러 다니던 시절, 힘들게 감수하던 그 자리를 마음먹고 거절하자 한 선생이 노여움을 담아 말했다. 배추도 죽을 때는 고통을 느끼는데, 그건 어떻게 천연덕스럽게 먹느냐는 일갈이었다. 그의 논리가 억지라고 생각되는 순간 평소 외면하고 있던 그의 진짜 모습을 본 듯했다. 그 전까지 나는 한 번도 그의 식성을 탓한 적이 없었는데, 그 뒤부터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부인과 보신탕집에 앉아 수육을 먹던 풍경이 겹쳐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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