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5월 5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가 1821년 오늘(5월 5일) 위암으로 숨졌다. 향년 51세.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그는 19세기 초 거의 전 유럽을 지배하며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을 대륙과 세계에 전파했다. 폐위 후 그의 진공은 근대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건설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1769년 8월 프랑스령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11개월 만에 전 과정을 이수하고 16세에 프랑스군 포병 장교로 임관했다. 이듬해 혁명에서 자코뱅을 지지했다. 이후 몇 차례 정치적 문제에 연루돼 좌천ㆍ투옥되기도 했지만, 그는 탁월한 군인이었다. 반혁명파(왕당파)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 발군의 공을 세우면서 20대 중반에 이탈리아 원정 사령관이 됐다.
5인 통령체제였던 혁명 정부는 청년 장군 나폴레옹을 견제하기 위해 1798년 이집트 정벌을 명한다. 앙숙 영국의 인도 해상항로를 차단하라는 거였다. 그는 이집트 정벌에 성공하지만 그가 떠난 프랑스는 영국과 오스트리아의 집중적인 공세에 질식해갔고, 프랑스 지중해 함대마저 영국 함대에 의해 곤죽이 되면서 나폴레옹 원정군은 이집트에 고립된다. 79년 10월, 명령 없이 혼자 프랑스로 귀국한 서른 살의 그는 한 달 뒤 본국 군대와 테르미도르파 의원들의 지지를 업고 쿠데타에 성공, 3인 통령체제의 제1통령이 됐다.
이듬해 알프스를 넘어 오스트리아를 정복했고, 또 이듬해 숙적 영국을 제압한 뒤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1804년 국민투표를 거쳐 제정을 부활시켰고, 스스로 초대 황제가 됐다. 대관식에서 교황을 제쳐두고 직접 황제관을 쓰고 아내 조세핀에게 황후관을 씌워준 일화는 유명하다. 나폴레옹 1세는 모두 6차례나 동맹을 맺어 떼로 덤빈 유럽 열강을 잇달아 제압했다. 오스트리아 프란츠1세, 러시아 알렉산드르 1세, 프로이센 빌헬름 3세, 스페인 페르디난드 7세 등을 무릎 꿇렸고, 1000년 역사 신성로마제국을 문닫게 했다. 그는 나폴리에 형 조제프를, 네덜란드에 동생 루이를, 베스트팔렌에 막내 제롬을 왕으로 파견, 유럽을 일가의 나라로 만들어 군림했다.
나폴레옹 법전, 세제ㆍ행정 개혁, 공공교육법 제정….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이전, 그 기틀을 닦은 세계의 수도 파리도 그의 도시 근대화 정책의 결과였다. 그는 딱 10년 재임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