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책임 피하고 국민들만 고통”
일각선 “청문회로 정책결정자 추궁을”
총선 이후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이번 사태를 초래한 책임 규명 문제는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이라는 이례적 수단까지 압박하고 있는 정부는 부실 책임과 관련해서는 “산업은행 감사 결과와 대우조선 전 경영진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장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더 큰 손실을 막자는 게 구조조정의 취지라면 위기의 책임을 철저히 따져 재발을 막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정부의 자세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문제는 위기 자체보다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며 “정부가 국민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위기 속에 오히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피하고, 국민들만 고통을 떠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먼저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김성식 정책위의장도 “정부가 책임 있는 반성과 함께 대책을 제안한다면 협력할 의향이 있다”면서 “산은을 위시한 낙하산 인사들이 조선업의 현재 위기에 일조했다는 보도가 많은데, 호황기 파티에 밤을 지낸 사람들이 누구인지 동시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대 여소야대 국회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의당의 이런 입장에 더불어민주당도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향후 정부 책임 규명론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국회가 적극 나서서 청문회를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의회는 청문회를 열어 부실 경영인과 정책 결정자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 바 있다.
실제 지난해 불거진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분식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든 대형사고였지만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이를 감독하는 금융당국은 여전히 책임론 밖에 머물러 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해운업만 해도 벌써 수년 전부터 위기가 예견됐지만 국책은행의 지원을 사실상 결정했던 경제부처 장관 등 청와대 서별관회의 멤버들은 언급조차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국책은행의 책임만 강조할 뿐 정부 스스로의 책임 문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이날 열린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첫 협의체 회의에서도 “재정 등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것이므로 당사자의 엄정한 고통분담을 원칙으로 하겠다”며 국책은행 책임론만 강조했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는 “최근 조선ㆍ해운업 위기는 정치권ㆍ관료ㆍ국책은행ㆍ부실기업의 보이지 않는 유착관계에서 비롯됐다”며 “필요하면 청문회라도 열어야겠지만 소모적인 정치논쟁화도 우려되는 만큼 국책은행과 산하 기업들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정부 기관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추진해 명확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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