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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루저의 반란

입력
2016.05.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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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축구계의 거만한 명장 조제 무리뉴 감독은 그를 루저(Loser)라고 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첼시 시절인 2004년 시즌 도중 경질됐다. 후임인 무리뉴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라니에리로는 우승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 그가 루저가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루저 소리를 듣던 감독이 오는 15일 올 시즌 저조한 성적 때문에 중도 교체된 무리뉴의 첼시 구장에서 레스터시티를 이끌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런 반전 드라마는 만들기도 어렵다.

▦ 라니에리의 아이들은 또 어떤가. 11경기 연속 골로 프리미어리그 기록을 갈아치운 스트라이커 제이미 바디는 조기축구팀이나 다름없는 주급 5만원의 8부 리그 선수였다. 올해의 선수로 뽑힌 윙어 리야드 마레즈는 프랑스 7부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꺾이지 않는 잡초 인생을 살아온 감독과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프로리그 역사를 바꿨다. 부자구단 첼시 주전들의 이적료 총액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선수들로 1884년 창단 후 132년 만의 첫 우승을 해냈다. 베팅업체들이 개막 전 제시한 5,000분의1 우승 확률을 현실로 만들었다.

▦ 아름다운 축구 신화를 쓴 라니에리 감독의 특이한 리더십이 화제가 됐다. 시즌 첫 경기를 앞두고 그는 선수들에게 록밴드 음악을 틀어줬다. 이탈리아 AS로마 시절 이탈리아 코파 결승전을 앞두고는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선수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선수와의 소통, 자발성을 중시했다고 한다. 그는 경기 전 신경전을 펼치는 데 능한 무리뉴 스타일에 대해 “나는 그런 축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레스터시티 이전에는 감독 인생 30년 동안 1부 리그 우승을 한번도 못했지만 정정당당한 승부를 즐겼다.

▦ 레스터시티 성공스토리에서 땀과 눈물을 빼놓을 수 없다. 바디는 자신을 불러주는 구단이 없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을 놓지 않은 연습벌레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무를 나르는 힘든 노동을 하면서 공을 차고, 잠을 자는 것 외에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라니에리 감독이 한때 그에게 슈팅훈련 금지령까지 내렸을 정도였다. 그의 경기력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는 올해 잉글랜드 축구국가대표로도 뽑혔다. 루저의 반란이 그냥 일어나는 법은 없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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