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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전문가 길 접고 23년째 부모 봉양... "자식된 도리일 뿐"

입력
2016.05.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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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어버이날 효행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는 김숙현(59·오른쪽)씨와 병상의 어머니 박옥순(91)씨. 연합뉴스
오는 어버이날 효행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는 김숙현(59·오른쪽)씨와 병상의 어머니 박옥순(91)씨. 연합뉴스

요즘 세상에 병든 부모를 간호하느라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희생하는 딸이 있을까. 울산시 울주군에 사는 김숙현(59)씨는 환갑이 다 된 나이지만 여전히 미혼이다. 김씨는 외국 유학으로 다진 출중한 영어실력을 갖췄음에도, 23년 동안 시간제 일자리를 갖기 위해 생산직종 등을 전전해 왔다.

서울 상명여고와 영국 크로이던 대학(Croydon college) 언어학과를 수료한 김씨는 젊은 시절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외국을 오가며 통역 일을 하는 당찬 커리어 우먼이었다. 외국 출장을 가는 국내 기업가들과 동행하며 통역과 비서 일을 맡았으며,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배낭 여행을 하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일자리를 구해 몇 개월간 살기도 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2남 1녀 중 위로 오빠를 둔 장녀였던 그는 오빠가 미국에 거주하기 시작한 서른 살쯤부터 부모님을 모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38살이 되던 1994년, 신부전증을 앓던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해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자 김씨는 자신이 누리던 화려한 삶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 치료를 위해 공기가 좋은 경기 안성시로 거주지를 옮긴 후 시간제 통역일 등을 하며 부모님을 봉양했다. 이후 충북 진천군의 한 플라스틱 용기 제조공장에 입사해 생산직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7년 전 미국에 살던 오빠가 사망하면서 도움의 손길이 끊겼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증사고까지 발생해 갑자기 생계조차 힘들어지게 됐다. 결국 2013년 조카가 사는 울산으로 이사해 조카의 도움을 받아 월세방을 얻은 후 부모 봉양에 더욱 힘을 쏟았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해 4월에는 폐결핵과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쓰러져 울산대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게 되자 치료비 월 600여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주야로 모텔에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유창해 처우가 비교적 괜찮은 기업에 취업할 기회도 있었지만, 몸이 편찮은 부모 곁을 비울 수가 없었다.

그런 노력에도 결국 아버지는 지난 2월 9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김씨는 “아버지가 편안하게 임종을 맞으신 것이 나에겐 가장 큰 위로지만 올해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지 못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91세에 홀로되신 어머니 봉양에 최선을 다했지만 얼마 전 어머니가 외출했다 낙상을 당해 시름이 커졌다. 병원에서 어머니 낙상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어머니가 빨리 건강을 회복하셨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아프지 않은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며 웃었다.

김씨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평소 이웃 어르신들도 정성껏 대하며, 효행을 실천해온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6일 울산 종하체육관에서 열리는 ‘제44회 어버이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그는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이 당연한 자식 된 도리이고 저보다 힘든 자식들도 많을 텐데 상을 받게 돼 너무 부끄럽다”며 겸손해했다.

울산=김창배기자 kimcb@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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