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토끼뜀 대일 외교

입력
2016.05.04 14:24
0 0

토끼뜀. 두 손으로 귀를 잡고 쪼그려 앉아 토끼처럼 뛰어가도록 하는 체벌이다. 이것이 체벌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인간적인 토끼 체형을 강요하므로 오래 하면 관절이나 근육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체벌이라 하더라도 그 효과가 지극히 의심스럽다. 한국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는 등 정세변화가 있었지만, 한일관계에서는 이처럼 노력 대비 성과가 매우 불투명한 데다 부작용마저 유발하는 토끼뜀 외교가 불안하게 이어지고 있다.

우선 위안부 문제. 지난해 말 두 나라 정부가 뜬금없이 ‘최종적으로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이 문제를 놓고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피해 할머니들의 동의조차 얻지 않은 채 과거사를 묻어버려 놓고도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한국 정부의 행태이다. 한국 정부는 한일관계가 국익을 다투는 외교 이상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국내정치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떻게 피해자인 국민을 배제한 외교가 가능한가.

여기에 일본 측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가 전제조건이었다면서 토를 달았고 한국 측은 그런 일이 없다고 발끈했다. ‘불가역적으로’ 서로를 꼼짝 못 하게 묶어놓았다는 데도 둘 다 자의적 해석에만 열심인 모양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어떻게든 재단을 만들어 이 문제에 대못을 박겠다고 한다. 정부 간 약속도 국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수정하겠다는 최소한의 상상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떤 토끼뜀에 속하는지는 가늠하긴 어렵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도 무수한 반론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줄기차게 추진되고 있다. 대단한 첩보작전이라도 벌이는 듯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학자들이 ‘밀실’에 모여 앉아 교과서를 만든다. 총선 민심이야 어떻든 간에 자기들이 그리고 싶은 대한민국만을 기록하겠다는 아집은 그대로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성세대의 갈등은 다음 세대에 물려주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와 맥락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런 우리가 일본에 역사를 직시하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밀실추진 논란으로 막판에 무산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도 북한 핵 위협 대응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라는 분위기를 타고 바야흐로 때를 저울질하고 있다. GSOMIA는 한일관계의 또 다른 ‘판도라 상자’이다. 동맹 관계에서나 있을 법한 군사정보의 공유를 한일관계가 전면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일본과 사실상 군사동맹을 맺는 데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국민 정서에 가로막혀 뚜껑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한미일 3각 동맹 구축을 통한 중국 견제를 강력히 희망하는 미국이나 일본의 압력을 뿌리칠 수 있을까.

한국의 외교 목표는 한반도의 안녕과 평화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미, 북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대일 정책도 당연히 이런 목표에 부합하도록 하는 게 순리이다. 그런데 과연 현재 한국 외교는 이러한 목표를 제대로 추구하고 있는가. 그저 북한의 도발로부터 한국을 보호한다는 냉전적 망령에 갇혀 미국과 일본의 바짓가랑이를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형국 아닌가. 과도한 ‘대미 예속’과 ‘대일 결탁’이 한국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우리는 과거사마저 또다시 ‘타협’해버려 자존심에 큰 구멍이 생겼다.

토끼뜀으로 피곤해진 몸은 자연 자세로 돌리면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연스럽게 치유할 수 있다. 한국의 대일외교가 혼선을 빚은 것은 무엇보다 인간, 즉 한국과 일본인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상식적이고 그다지 효용도 검증되지 않은 토끼뜀 대일 외교는 전면 재조정돼야 한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