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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혼여족’의 說풀기 – 앙코르와트(1)

입력
2016.05.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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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곳을 가려 한 것은 아니었다. 낯선 곳이 가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당연히 파리를 계획했다. “당연히”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나는 늘 파리를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쇼핑을 위해서도 아니고, 긴 다리를 꼰 채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프랑스 말을 멋들어지게 하는 프랑스 남성과의 로맨스를 꿈꾼 것도 아니었다.

꽤 오래전부터 같은 꿈을 꾸곤 했다.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급하게 달려가거나, 파리행 비행기 안에 있기까지도 했다. 하지만 파리에는 도착하지 못했다. 내 꿈에서 나는 왜 파리를 가고파 하는지, 파리를 가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싱거울지 모르지만, 이게 유일한 이유였다. 중학교 때 내가 단 한 번도 좋아한 적 없던 연예인(죄송합니다, 배우 최수종 씨)이 내 꿈에서 내게 입맞춤(첫 키스였다)을 한 이유가 두고두고 궁금했듯, 파리를 가고파 하는지도 순수하게 궁금했다. 난 호기심 많은 소녀(갸우뚱), 숙녀(갸웃) 음…. 싱글이니까.

변호사 일정과 방송 일정을 모두 조정하고 2015년 11월 21일 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일주일 내내 파리에만 있을 예정이었다. 파리 관련 책자도 이미 세 권이나 산 상태였다. 하지만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오전 아침부터 모든 뉴스가 수니파 과격단체 이슬람국가(IS)의 파리테러 소식으로 도배되었다.

고민 끝에 위약금을 내고, 비행기 티켓을 캄보디아의 시엠레아프 행으로 변경했다. 얼마나 갑작스럽게 결정했는지, 가이드북을 인천공항에서 사야만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낯선 곳을 돌아다니기보다는 낯선 곳에서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낯선 곳을 가면, 골목도 건물도 언어도 사람도 음식도 모든 게 낯설다. 익숙한 존재는 오직 하나, 나뿐이다. 낯선 골목의 낯선 카페에 앉아 있으면, 유일하게 낯익은 존재인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 시간에 머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시간이 끝나고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제야 나를 감싸는 편안함도 좋다. 낯섦과 익숙함 사이, 間 그 긴장이 좋다.

다시 시엠레아프 이야기로 돌아오자. 파리 대신 시엠레아프. 비슷한 점이 언뜻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게는 나만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또다시 “궁금”.

장만위(張曼玉)가 몸에 꼭 끼는 치파오를 입고 하이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면서 골목 저 끝에서 걸어온다. 키는 작으나 눈빛만은 세계 최고로 그윽한 남자 량차오웨이(梁朝偉)가 그녀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그들은 배우자의 불륜이라는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감정을 함께 나누다 보니 그들은 사랑이라는 감정도 함께 나누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떠나야 했다. 흔한 입맞춤 한 번 없이.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이 연출한 영화 ‘화양연화’ 이야기다.

설마 이게 아닐 거야 아닐 거야. 관객들은 그래도 영화 마지막에는 극적인 재회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까지 고집 있었다. 량차오웨이는 붉은 석양이 비스듬히 비치던 한 사원 벽에 서서, 사원의 작은 돌 틈에 가슴 속 이야기를 소곤소곤 털어놓았다. 그게 영화의 끝이었고, 재회는 없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사원이 바로 앙코르와트였다.

그가 돌 틈에 묻어놓고 싶었던 자신의 이야기는 누구에 대한 것이었을까. 옆 집 남자와 사람에 빠진 자신의 아내였을까, 아니면 내 아내와 사랑에 빠진 남편의 아내였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더 궁금한 것은 “그럼 나는?” 이었다. 그럼 나는 그 돌로 된 유물들에 어떤 귓속말을 하고 싶어 할 것인가. 아열대 밀림 속에서 비밀리에 500년을 존재하였던 유물들에게 말이다. 파리행을 포기하고서야 기억이 났다. 이 궁금함이. 그리고 왜인지 그곳에 가면 나조차 기억나지 않는 내 가슴 속 이야기가 생각날 것만 같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씨엠레아프 행 비행기를 타게 만든 이유였다.

(다음 회에 계속).

‘혼여족’은 혼자 여행하는 족의 준말로, 혼밥족에 빗대어 필자가 만듦.

임윤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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