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모터스(GM)의 대표 중형세단 말리부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1년 말이다.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생산한 8세대 말리부는 흠 잡을 데 없는 디자인에 단단한 차체로 꽤 인기를 모았다. 다만 경쟁 차종에 비해 부족한 파워와 순발력은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완전 변경돼 돌아온 9세대 ‘올 뉴 말리부’는 이런 단점까지 보완됐다.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인은 물론 속(엔진)까지 모두 바뀌었다.
3일 오전 서울 광진구 W호텔에서 열린 한국GM의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직접 본 올 뉴 말리부는 일단 차체가 컸고 스포츠 세단처럼 날렵하게 빠졌다. 같은 회사 한 체급 위 선수인 준대형 세단 임팔라에 뒤지지 않을 만한 덩치다. 쉐보레 라인업의 새 패밀리룩인 ‘듀얼 포트 그릴’이 들어간 전면도 임팔라를 떠올리게 했다.
축간거리(휠 베이스)가 93㎜ 확장돼 내부는 여유로웠다. 버튼을 많이 넣지 않은 차량 내부 중앙 부분(센터페시아)은 르노삼성자동차 SM6 같은 신선한 맛은 없었지만 나름 깔끔한 편이다. 2열 뒷좌석 공간(레그룸)이 이전 세대에 비해 33㎜ 늘어나 뒷좌석 공간도 경쟁차종들보다 넓고 편했다.
봄비답지 않게 꽤 많은 비와 함께 강풍이 몰아친 도로로 말리부를 몰고 나갔다. 2.0 가솔린 터보 엔진이 장착된 최상위 트림이다. 시승은 W호텔에서 경기 양평군 중미산천문대까지 왕복하는 약 120㎞ 구간. 올림픽대로와 서울-춘천고속도로, 산길을 포함한 국도가 어우러진 도로다.
GM의 고급 브랜드 캐딜락CTS에 들어가는 2.0 터보 엔진은 동급 최대 출력(253마력)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았다. 핸들은 여전히 묵직한 편이지만 가속 페달은 한결 가벼워졌다. 초반 가속이 한 박자 느렸던 이전 GM 차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가볍게 속도를 올려갔다. 6단 변속기도 재빨리 엔진 회전수를 맞춰갔지만 운전석에서 느끼는 가속력이 최근 출시된 경쟁사들의 가솔린 터보 차량을 압도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주행 안정성을 높이 평가 받는 GM 차답게 전륜 구동에 차체가 긴 데도 회전구간에서 뒤쪽이 쏠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19인치 타이어가 장착된 영향도 있겠지만 빗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차체의 균형감이 나아진 듯 했다.
W호텔 안에서 보행자가 앞으로 지나갈 때는 계기판에 경고를 띄우는 전방 보행자 감지 시스템이 작동했다. 제원상 2.0 터보 모델에는 보행자나 전방 차량 충돌이 예상될 경우 저절로 브레이크를 작동하는 긴급제동시스템이 장착됐다. 시속 50㎞ 이하에서 작동한다는데 주행거리가 1,000㎞ 남짓인 완전 새 차라 제대로 되는지 시험하지는 못했다.
약 62㎞를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며 달린 뒤 측정한 연비는 2.0 터보 모델 복합연비(10.8㎞/ℓ)보다 높은 11.6㎞/ℓ. 연비 주행을 하면 2.0 터보로도 동급 중 가장 높다는 1.5 가솔린 터보 모델(13.0㎞/ℓ) 수준의 연비를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SM6에 기본 적용된 헤드업 디스플레이나 신형 아반떼에도 달린 운전모드 변경 기능이 없다는 것은 아쉬웠다. 미국에서 팔리는 2.0 터보에는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렸지만 국내에서는 6단을 달고 나왔다는 것도 섭섭한 대목이다.
올 뉴 말리부는 이전 말리부보다 진일보한 중형 세단이지만 모든 부문에서 경쟁차들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쏘나타나 K5, SM6와 매력 포인트가 겹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한 강점이다. 넓은 실내와 가격, 부족하지 않은 파워와 탁월한 안전성 등을 고려하면 기존 강자들과 충분히 맞짱을 뜨고도 남을 만한 경쟁력을 갖췄다.
지난달 2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첫 쇼케이스를 연 뒤 4일간 사전계약이 6,000대를 돌파한 것은 이런 잠재력의 방증이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은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어린이날 황금연휴에도 말리부를 만든다. 한국지엠으로서는 모처럼의 휴일 반납이다. 말리부의 초반 돌풍에 고무된 한국GM 측은 쏘나타를 넘어 서겠다는 야심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데일 설리번 한국GM 영업ㆍ마케팅 부문 부사장은 “판매 목표를 밝힐 수는 없지만 가솔린 모델만 나온 상태에서도 경쟁차종보다 판매량이 우월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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