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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정조의 효심 깃든 양평 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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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정조의 효심 깃든 양평 배다리

입력
2016.05.0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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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 세미원과 두물머리 사이 북한강 위에 재현 된 배다리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정조는 당시 노들나루에 만들어진 배다리를 이용해 화성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한 달이 멀다하고 찾았다.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경기도 양평 세미원과 두물머리 사이 북한강 위에 재현 된 배다리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정조는 당시 노들나루에 만들어진 배다리를 이용해 화성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한 달이 멀다하고 찾았다.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경기 양평군 세미원과 두물머리 사이에는 조선시대 정조의 능행차 때 사용되었던 배다리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어린 나이에 목격한 후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냈다. 임금으로 즉위한 날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치며 곧바로 양주에 있던 부친의 묘소를 화성으로 옮겨 현륭원을 조성한 후 방문 길에 올랐다. 그러나 정조의 행렬을 가로막은 최대의 난코스는 한강이었다. 수많은 관리들과 병사들이 따르는 어가행렬이 한강을 건너려면 넓고 튼튼한 다리가 필요했다. 궁리 끝에 36척의 배를 연결해 다리를 만들어 무사히 아버지의 능이 있는 수원 화성으로 행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이 다리를 배다리(舟橋)라고 불렀다. 역사 속의 다른 왕들은 온천이나 사냥 등 건강과 향락을 위해서 배다리를 이용했지만 정조는 온전히 아버지에 대한 효심으로 이 다리를 건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연휴기간, 가족의 손을 잡고 배다리를 건너보며 정조의 효심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멀티미디어부 차장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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