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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인공지능 시대에 사는 법

입력
2016.05.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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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졌다.” 지난 3월 9일 언론은 이렇게 대서특필했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연초에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우리는 코웃음을 쳤다. 적어도 올해는 이세돌이 완승한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앞으로 3월 9일은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았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편해지기 마련이다. 두 번째 판과 세 번째 판을 이세돌이 내리 지자 우리는 되레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에게는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속도보다 오히려 분노와 좌절 대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인류의 적응성이 더 놀라웠다.

여기에는 아마도 이세돌의 품성이 한몫했을 것이다. 5대 0 또는 4대 1로 가볍게 이길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이세돌은 지는 게임의 수가 쌓여 가는 와중에도 침착했다. 세 판을 잇달아 내준 이세돌 9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최고의 바둑 고수가 던진 이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았던가.

“한 판을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를 받아본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3연패 후 한 판을 이기니까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많은 격려 덕분에 한 판이라도 이긴 게 아닌가 합니다. 감사합니다.” 3월 13일 늦은 오후 이세돌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이세돌의 4연패를 예상한 상태에서 마련된 KBS ‘장영실쇼’의 ‘알파고 특집’편 생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앉아서 이 인터뷰를 들었다. 그때 프로그램 작가들의 환호를 들었고 행복한 표정을 보았다.

세 판 내리 지다가 겨우 한 판 이긴 게 대수가 아니었다. 세 판을 내리 진 다음에도 그리고 한 판을 이긴 다음에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이세돌에게 위안을 받은 것이다. 이세돌의 품성에서 우리 인류가 인공지능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 것이다. 앞으로 3월 13일은 인류가 인공지능 알파고에 이긴 하루라고 기억될 것이다.

알파고 덕분인지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바람이 불고 있다. 4월 말까지 이미 12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100만부 이상 팔렸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정의란 무엇인가’와 달리 이 책은 대부분의 독자가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명징한 논리로 한달음에 달려가는 깔끔한 필치와 능숙한 번역 때문이다.

지난 4월 29일 유발 하라리 교수가 서울시청 8층에 와서 짧은 강연 후 박원순 시장과 북토크를 나누었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나 해야 하며 그 일마저 나중에는 인공지능이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때 박원순 시장은 한 고위간부를 지목하여 “앞으로 인공지능이 다 한다는데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고 의견을 물었다. 그 간부는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노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이 대답에는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아무리 빼앗을지라도 자본주의는 작동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이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가 신작 ‘인간 대 기계’에서 말하는 ‘기본소득’이든 아니면 다른 방책이 있든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책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바탕에 깔렸을 것이다.

이 담담한 대답에 통쾌함을 느꼈다. 부산대학교 물리교육학과의 김상욱 교수가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했던 “일은 인공지능에 시키고 우리는 놀자”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다. 어느새 이세돌의 품성이 전염되고 있다. 아니면 우리는 몰랐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멋진 품성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앞으로 힘들고 복잡한 일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 바로 ‘놀이’에 매진할 일이다. 그렇다면 ‘놀이’의 핵심 요소는 뭘까? 왜 노는 게 그리도 즐거울까? 바로 ‘실패’가 있기 때문이다.

숨바꼭질 놀이가 재미있는 까닭은 아무리 숨어도 결국에는 들키고 말고, 고무줄 놀이가 재미있는 까닭은 결국에는 고무줄에 걸려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술래가 절대로 찾지 못하고 고무줄을 아무리 높이 들어도 명랑하게 노래를 부르며 끝까지 넘을 수 있다면 그 놀이는 재미가 없다. 놀이가 재미있는 까닭은 결국에는 실패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잘 알고 있고, 그 실패를 아이들이 담담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실패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과학도 그렇다. 나는 감히 말한다. ‘과학은 실패다.’ 과학은 원래 실패하는 것이다. 그게 계산이든 사고이든 관찰이든 실험이든 과학자의 일상은 실패의 연속이다. 100번에 한 번쯤 성공한다. 과학자들은 이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원래 과학은 실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을 즐겁게 할 수 있다.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좌절하면 데이터를 조작하고 남의 논문을 베껴 쓰게 된다.

과학관은 일반인들에게 과학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다. 관람객들은 과학관에서 찬란한 과학의 업적들을 보고 감탄한다. 전시물만 보면 과학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천재들인 것 같다.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야 할 과학관에서 오히려 ‘아, 과학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과학자가 될 사람은 따로 있어.’라는 생각에 빠질 수도 있다.

이제는 과학관도 ‘실패’를 경험하는 곳이어야 한다. 실패가 거듭되고 일상이 되면 그것은 우리의 놀이가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 놀이의 근육을 단련시키면서 이세돌의 품성을 품으려면 ‘실패’에 익숙해져야 한다. 실패하기 위해서는 일단 해봐야 한다. 과학관은 과학을 보는 곳이 아니라 과학을 직접 해보고 실패하는 곳이어야 한다.

서울특별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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