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이 나라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산업은 물론 우리 경제 전체를 이끄는 역할을 해 오던 몇몇 산업들이 구조조정의 된서리를 맞게 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라는 엄혹한 시절을 겪은 우리로서는 구조조정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같이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큰 나라에서 그동안 자랑스럽게 일해 오던 직장에서 쫓겨나는 현실은 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할수록 적자가 쌓여가는 기업들을 그대로 두고 이것들을 살려내려 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 경제 전체에 더 큰 부담을 전가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정치권 모두 구조조정을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두고 신속히 처리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면 국민 모두의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이 문제를 다루는 기본적인 자세인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을 (즉 자율협약을) 우선하겠다는 결정에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관점에서 추가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있지 않나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우선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과 기업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 등에는 철퇴를 가해야 마땅하지만, 이들 산업의 향후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즉, 해운의 경우 시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확장에만 매달려서 용선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인 점, 조선의 경우 수주전에 매달려 자신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 기술 분야의 위험성까지 끌어안은 오류 등의 경영진의 잘못과 이들 산업이 아직 우리 국가경제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은 분리해서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이들 산업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쟁력 요인들이 위와 같은 경영적 오류만 제거한다면 앞으로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구조조정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 판단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산업 분야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시각을 지닌 전문가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비친 구조조정의 모습에서는 채권단 즉 금융권의 역할은 충분히 강조되고 있지만 산업 전문가들의 견해는 중시되지 않아 하는 말이다.
다음으로 막상 우리나라에서 구조조정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즉,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산업에서 막대한 적자를 떠안게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우리 기업들만이 아니라 이웃 중국, 일본의 기업들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할 요소가 다분히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 현상이 더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하더라도, 한중일 3국이 경쟁적으로 생산시설을 늘려 온 점이 지금 3국의 산업 상황을 어렵게 만든 공동의 업보인 것도 틀림없다. 특히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의 장치산업에서는 이들 3국이 세계적인 공급과잉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공급과잉 상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알려졌다.
그런 의미에서 과잉 생산시설을 조정하려는 노력이 중국, 일본 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 말에 산업활력재생법을 도입하여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 왔고 이제는 기업들 스스로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 역시 시진핑 정부 출범 이래 ‘신창타이’의 기치 아래위에서 든 산업들의 생산시설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중일 3국이 구조조정 노력 차원에서 보조를 함께할 여지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유럽 각국이 일본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추격에 쫓겨 철강, 조선 등에서 경쟁력을 잃어갈 때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동으로 협의하는 노력을 기울인 선례도 있기 때문이다.
김도훈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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