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한 보험금 5억2000만원 주식투자 등으로 대부분 탕진
소문 들은 제보자, 금융감독원에 신고하면서 해결 실마리
2013년 2월23일 오전 1시40분쯤 경북 의성군 다인면 한 농촌지역 도로에서 인근에 사는 김모(당시 54ㆍ농업)씨는 라이트를 끄고 달려든 1톤 트럭에 치어 신음하다 숨졌다. 김씨는 그날 농사일을 가르쳐 달라며 전날 저녁 찾아온 이모(당시 43)씨와 집에서 20리 가량 떨어진 읍내에서 막걸리를 한잔하고 이씨가 태워준 차를 타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인적이 한적한 곳이다 보니 숨진 김씨의 시신은 날이 밝으면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고, 사건발생 7시간도 더 지난 오전 8시50분쯤에서야 경찰에 신고됐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김씨의 행적과 현장을 샅샅이 훑었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 가능성도 조사했지만 혐의를 확인하지 못했다. 김씨 명의로 가입된 보험은 납입보험금이 월 1만원과 6만8,000원짜리 2건밖에 없었고, 김씨 아내는 뺑소니교통사고를 당하면 받을 수 있는 자동차보험까지 모두 3개 보험에서 5억2,000만원을 수령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2013년 2월22일 특가법상 뺑소니사건 공소시효 10년이 되면서 영원이 묻히는 듯 했으나 지난해 11월 금감원에 “보험금을 노린 뺑소니교통사건이 있었다”는 첩보가 입수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맞았다. 금감원으로부터 첩보를 넘겨받은 경북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당시 사건기록을 재검토하고, 계좌추적과 탐문수사에 나서 아내가 보험금을 노려 여동생을 시켜 남편을 살해해 달라고 청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북지방경찰청은 3일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해 줄 것을 청부한 아내 박모(65)씨와 박씨 여동생을 통해 범행에 가담한 이모(56)씨 등 4명을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아내 박씨는 2013년 2월 여동생(52)에게 김씨를 살해해 줄 것을 부탁했고, 여동생은 평소 알고 지내던 최모(52)씨에게 수 차례에 걸쳐 형부를 살해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살인을 결심한 최씨는 또 자신의 중학교 동창인 이씨에게 “보험금이 나오면 나눠주겠다”고 제안했고, 자영업을 하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이씨도 기꺼이 가담했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노리고 범행 1주일 전 현장을 답사했다. 또 행동책 이씨는 미리 “농사를 배우고 싶다”며 김씨에게 접근, 안면을 트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범행 전날인 토요일 저녁 김씨를 불러내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씨는 술을 마시는 시늉만 했다. 김씨가 취하자 자정이 넘어 자신의 1톤 트럭으로 집 앞에 내려준 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김씨를 그대로 밀었다. 범행날짜를 일요일로 잡은 것도 휴일 야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면 보험금이 더 많이 지급되는 특약에 가입한 사실을 노렸기 때문이다.
아내 박씨는 사건발생 후 3개 보험사로부터 모두 5억2,000만 원을 받아 2억 원은 자신의 생활비와 유흥비 등으로, 4,500만 원은 행동책 이씨에게 주고 나머지 금액은 여동생과 최씨 2명이 주식투자 등으로 대부분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발생 이후에도 이들은 범행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4,500만 원의 ‘수고비’를 실제 범행을 결행한 이씨에게 전달할 때 한 번에 200만~500만 원씩 소액으로 인출, 10개월에 걸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뺑소니사건 발생 당시에도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보험가입 건수와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간과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지난해 7월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 시행 후 장기 미제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나서 구천을 떠돌던 원혼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아내의 살인청부 동기와 보험금 배분 내역을 구체적으로 밝힐 방침이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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