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채권단이 조선·해운산업에 대한 전방위 구조조정을 준비하면서, 올해 들어 '수주 절벽'에 직면한 중소형 조선사의 처리를 위한 채권단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3일 조선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이미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거나 비상경영을 해 오던 중소형 조선사들은 세계적인 조선업황의 부진 탓에 올해도 좀처럼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선제적인 구조조정 주문을 받은 채권단은 중소형 조선사들의 처리 방안을 새롭게 강구하고 있다.
현재 채권단 관리를 받는 중소형 조선사는 STX조선·한진중공업·성동조선·SPP조선·대선조선 등이다.
STX조선은 2013년에, 한진중공업[097230]은 올해 1월에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갔고, 성동조선·SPP조선·대선조선은 나란히 2010년부터 채권단 관리를 받는 처지다.
길게는 6년 가까이 채권단 관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해 적자를 면한 조선사는 SPP조선(영업이익 575억원) 한 곳뿐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이익을 창출할 수단인 수주가 뚝 끊겼다는 점이다.
한때 수주 잔량 기준으로 세계 4위까지 올랐던 STX조선은 지난해 12월 이후 신규 수주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수주 잔량을 모두 인도하고 나면 내년 3분기 이후에는 건조할 배가 없어 작업장(야드)이 텅텅 비는 상황에 처한다.
STX조선은 사실상 올 상반기까지는 신규 수주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은 STX조선의 공동관리를 개시한 이후 4조원 이상의 자금을 수혈했고, 지난해에는 '특화 중소형 조선사'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최근 중소 조선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겠다는 정부 발표에 발맞춰 채권단은 STX조선의 재무와 경영상태를 다시 점검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결과에 따라 최악의 경우에는 법정관리로도 갈 수 있다"고 전했다.
성동조선에 대한 채권단의 '컨틴전시 플랜'도 준비되고 있다.
성동조선 채권단은 자율협약 이후 2조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하고, 지난해 9월에는 삼성중공업[010140]과 경영 협력을 맺어 정상화의 길을 모색했다.
삼성중공업이 영업망을 활용해 성동조선의 신규 선박 수주 등을 돕는 것이 협력의 골자다.
성동조선은 지난해 11월 거의 1년 만에 원유 운반선 2척을 수주했지만, 이후 추가 수주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 중반께 수주한 배를 인도하고 나면 마찬가지로 야드가 비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채권단은 상반기 중에 추가 수주가 이뤄지지 않으면 3곳의 야드 가운데 1곳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간 한진중공업 역시 수주에 어려움을 겪기는 매한가지다.
한진중공업은 상선 부문에서 수주가 추가로 이뤄지지 않아, 내년이면 영도조선소의 수주 잔량이 바닥을 드러낼 상황이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2020년까지 수주 잔량이 남아 있는 군용 경비정 등 소형 특수선 위주로 자연스럽게 영도조선소의 운영 방향을 잡을 방침이다.
자율협약 개시 이후 이미 1천3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한 채권단은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금명간에 1천200억원의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친환경 컨테이너선 등을 수주해 위기에서 벗어난 대선조선 역시 생산공정을 일원화해 소형 탱커·컨테이너선과 여객선에 특화한 조선사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나마 중소형사들 가운데 밝은 전망을 기대해볼 수 있는 SPP조선은 빠른 인수합병(M&A)이 이뤄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SPP조선은 채권단 공동관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11월 수주했던 유조선 8척의 선수금환급보증(RG)이 부결돼 계약이 취소되는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후 채권단이 삼라마이더스(SM)그룹과 매각 계약을 체결하면서 향후 3년간 최대 40척에 RG를 발급해주기로 해 영업 활동이 정상화될 기회를 얻었다.
SPP조선은 이란 국영선사인 IRISL과 탱커선 10척에 대한 수주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다만 수주가 마무리되려면 수출입은행에서 선박 금융을 제공해야 하는데, 선박 금융은 SM그룹과의 인수합병이 마무리된 이후에야 제공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SM그룹과 채권단은 인수합병 본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막바지 조건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PP조선 관계자는 "SPP조선의 구조조정에 공적자금 추가 투입이 더는 필요하지 않고, 채권단과 SM 그룹 사이의 양보와 타협만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조선업 구조조정이라는 큰 틀에서 양 당사자간에 대승적이고 전향적인 합의라는 모범적인 사례가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