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중ㆍ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의 배수 시스템이 설치 1년 여 만에 상급 기관에 보고도 되지 않은 채 교체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과 관련,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원자력 관련 최고 규제 감독 기관인 원안위의 김용환 위원장은 2일 “방폐장 배수 시스템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도 규제 기관에 사전 신고나 보고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문제란 지적에 따라 개선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현실적인 관리감독 시스템을 방폐장 운영사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협의, 체계적으로 구축할 방침”이라며 “원자력 산업 전체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사실상 감독 사각 지대에 놓여 있었던 방폐장 ‘일반 설비’의 안전 강화 방안 등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설치 1년여 만에 새 제품으로 교체된 배수펌프와 이물질이 쌓여 보수 장치를 단 배수배관은 원자력안전법과 관련 규정 등의 폐기물안전기준에서 ‘범주Ⅲ’로 분류된 ‘일반 설비’다. 폐기물안전기준은 방사능 위험도에 따라 범주Ⅰ~Ⅲ으로 나뉘는데 사무실과 차고, 도로, 지하 처분시설 중 일반 차량이 오가는 장소 등 방폐장의 상당 부분은 방사능 위험이 낮아 범주Ⅲ로 분류된다. 방사성폐기물을 직접 보관하는 지하 콘크리트 구조물(사일로)은 가장 높은 등급인 범주Ⅰ에 속한다. 방폐물을 담는 드럼과 드럼을 넣는 콘크리트 처분용기, 주요 전력 계통과 제어ㆍ감시시스템, 공기정화 설비, 방사능 유출 감지기 등은 범주Ⅱ에 들어간다.
범주Ⅰ과 Ⅱ는 통상 안전등급, Ⅲ은 비(非)안전등급(일반설비)으로 취급된다. 안전등급 설비는 교체나 보수 등 변화가 필요할 때 원안위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등 규제기관에 사전보고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비안전등급은 운영사가 규제기관 동의 없이 자체 조치해도 현재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 이는 방폐장에도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기준을 준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력 전문가들은 방폐장과 원전을 같은 수준으로 놓고 감독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가 수 십 년 운영해본 원전과 달리 방폐장은 처음 지은 시설이기 때문이다. 비안전등급 설비라고 하더라도 방폐장 전체의 안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달 54회 원안위 회의에 참석한 KINS 관계자는 펌프와 배관에 대해 “방사성물질 확산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전체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김무환 KINS 원장도 “배수펌프 교체 중에는 일부 펌프의 가동이 멈추기 때문에 비상상황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일반설비라도 규제기관의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화재방어용 설비도 범주Ⅲ로 분류돼 있지만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을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대학 교수는 “방폐장에서는 비안전등급 설비라 해도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규제기관과 사전보고나 조율 등을 거치도록 하는 조건부 규정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원안위 위원들은 향후 회의를 통해 비안전등급 설비의 안전성 확보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