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스터시티의 ‘위대한 도전’이다. ‘여우군단’ 레스터시티가 우승을 눈앞에 뒀다. 2일(한국시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1-1로 비기며 22승11무3패(승점 77)로 단독 선두다. 남은 2경기에서 1승만 하면 자력 우승이다. 더 빨라질 수도 있다. 2위 토트넘(19승12무4패ㆍ승점 69)이 3일 오전 첼시 원정에서 비기기만 해도 레스터시티는 우승을 확정한다.
레스터시티가 어떤 팀이야?
올 시즌 개막 전만해도 레스터시티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1984년 창단 후 줄곧 1ㆍ2부 리그를 오르내린 보잘것없는 클럽이었다. 1929년 1부 리그에서 준우승한 게 131년 팀 사상 리그 최고 성적이다. 지난 시즌에도 14위로 간신히 1부 리그에 잔류했다.
지난해 영국의 데일리메일이 발표한 프리미어리그 구단 가치 평가 순위에서 레스터시티는 2,180억 원으로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 중 18위에 그쳤다.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3조5,887억 원)의 10분의1에도 못 미쳤다. 레스터시티 선수단 연봉 총액(765억 원)은 첼시(3,600억 원)의 5분의1 수준이다.
최근 20년간 프리미어리그 정상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1번, 첼시 4번, 아스널 3번, 맨체스터 시티가 2번 차지했다. 이들 빅4 클럽이 우승을 독식하는 구조였다. 레스터시티의 우승을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라니에리가 쓴 신화
레스터시티 신화의 비결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이탈리아)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작년 7월 레스터시티가 라니에리 감독을 선임할 때만 해도 영국 현지에서는 반신반의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첼시(잉글랜드)와 유벤투스(이탈리아), 발렌시아(스페인) 등 유럽 4개국 14개 클럽 지휘봉을 잡았다. 경험은 풍부하지만 반대로 뚜렷한 업적이 없어 이 팀 저 팀을 전전했다고 볼 수도 있다.
라니에리 감독은 레스터시티의 선수 구성을 고려한 맞춤형 전술을 들고 나왔다.
어찌 보면 단순하다. 끊임없는 압박으로 상대를 괴롭힌다. 웅크리고 있다가 번개 같은 역습으로 상대 골문을 가른다. 이를 위해 강한 체력은 기본이다. 실제 라니에리 감독의 훈련 강도는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스터시티는 선수층이 두껍지 못하다. 주축 선수들이 다쳐 장기 결장하면 치명적이다. 미 스포츠매체 ESPN은 “레스터의 선전 배경 중 하나는 적은 부상이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레스터시티에는 단 2명의 부상자만 존재했다. 왓퍼드(1명)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은 수치다.
바디와 마레즈 쌍두마차
카운트어택의 필수 요건 중 하나는 빠른 발을 가진 공격수다.
레스터시티의 공격을 이끈 ‘쌍두마차’는 제이미 바디(29)와 리야드 마레즈(25)다. 바디는 22골로 득점 3위, 마레즈는 17골로 5위다. 올 시즌 팀이 기록한 64골 중 둘이 40골을 합작했다.
2007년 치료용 목재 공장에서 일하며 아마추어 8부 리그 선수로 살던 바디는 올 시즌 11경기 연속골로 EPL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뽑혀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프랑스 빈민가 출신으로 알제리 이민 2세인 마레즈는 2013년 9억 원의 헐값에 레스터시티로 이적했다. 올 시즌 활약에 힘입어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엄청난 활동량
마레즈는 “우리 선수들은 경기장 어느 곳에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선수들의 활동량이 많고 열심히 수비했다는 의미다. 점유율과 패스성공률이 낮아도 흔들림이 없다. 선수들이 끊임없이 뛸 수 있도록 동기를 이끌어낸 것도 라니에리 감독의 힘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이런 기회는 다시는 없다. 가슴 속에서 불을 찾아라”고 독려했다.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강등권에 머물며 젖어있던 패배 의식을 걷어냈다. 라니에리 감독은 열심히 하는 만큼 땀의 대가가 있다는 믿음을 심었고 실제 성과가 나면서 선수들도 날개를 단 듯 비상했다. 기적이 현실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여우군단’은 이제 마침표 하나만 찍으면 된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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