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자본확충 급물살
이주열 총재 “국가적 시급 사안”
간부회의서 수행방안 점검 당부
“韓銀과 논의해 대책 강구할 것”
압박하던 정부도 유화 제스처
재원조달 방식 의견차는 여전
韓銀 “발권력 동원은 부담” 입장
향후 논의 과정서 갈등 재연 우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한국형 양적완화’ 재원 조달방안을 두고 충돌을 빚어온 정부와 한국은행이 불협화음 진화에 나섰다. 서로에게 구조조정 책임을 떠넘기며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한발씩 물러선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집행간부회의에서 “한은은 기업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며 “이제 기업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한은의 역할 수행 방안에 대해 다시 한번 철저히 점검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총재는 특히 “(4일부터 시작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에 참여해서 관계기관과 추진방안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주기 바란다”며 “대외발언을 할 때는 관계기관이나 일반국민의 오해가 유발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달라”고도 강조했다.
내부 간부회의 석상에서 나온 총재 발언은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 한은이 이날 언론에 보도자료까지 뿌려가며 강경 일변도에서 한 발 물러선 듯한 이 총재의 발언을 공개한 것은 국가경제적으로 시급한 사안에 대해 한은이 뒷짐만 지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정부도 유화적인 입장을 보였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정부 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 “정부와 한은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금융 불안에 대비하고자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재정과 중앙은행이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며 갈등설을 일축했다. 그는 이어 “정부 재정은 물론, 중앙은행의 역할이나 수단에 대해서도 과거와는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도 “법에 주어진 중앙은행의 책무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한은과 논의해 (자본확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이 서로 한 발씩 물러서면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논의가 탄력을 받을 거란 기대가 나온다. 특히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 총재가 3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3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등에 함께 참석하는 것도 기대를 높이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두 사람이 구조조정 재원 조달 마련을 위한 현지 비공식 회동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공식적인 자본확충 논의는 4일 최 차관 주재로 기재부ㆍ한은ㆍ금융위원회ㆍ산업은행ㆍ수출입은행이 참여하는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표면적인 진화에도 불구하고 발권력 동원 등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에 있어서는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여서 향후 논의 과정에서 두 기관의 갈등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정부는 법을 고치지 않고도 한은이 신속하게 자본확충에 나설 수 있는 수출입은행 출자, 산업은행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 인수 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한은은 국회에서 법을 바꿔주는 등의 사회적 합의 절차가 없으면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발권력 동원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세종=김진주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