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대표””전직 사장” 등 가족ㆍ친척 직업 기재 24건
5건은 신상 추정 가능한 수준, 법조계 가족 기재 특히 많아
로스쿨 10곳 기재금지 고지 안해, 교육부 뒤늦게 “신상 기재금지”
“쩐 장벽도 모자라 반칙까지” 비난
2일 교육부의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전수조사 결과 발표로 자기소개서에 부모와 친인척의 신상을 기재하고 합격한 사례가 드러나면서 ‘금수저’들이 법조인 또는 고위공직자 부모 등을 내세워 혜택을 입고 있다는 ‘현대판 음서제’ 의혹이 어느 정도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교육부와 로스쿨 측은 이를 부정입학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흙수저’들의 울분은 커지고 있다.
부정입학 의혹 소문 사실 가능성
이날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5명의 합격자들은 부모 등의 신상을 쉽게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기재했다. 시장직을 지낸 아버지를 둔 한 지원자는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전직 ○○시장”이라고 적시했고, “외삼촌이 ○○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아버지가 ○○법무법인 대표” 등 전ㆍ현직 법조계 인사 또는 고위공직자와의 관계를 부각했다. 이밖에 이름과 재직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등이 전직 대법관, 검사장, ○○법원 판사 등을 지냈다고 적은 사례들이 19건이었다.
법조계 안팎은 그간 소문으로 알려진 일부 사회지도층 인사 자녀의 부정입학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분위기였다. 한 대학 교수는 “전 대법관 자녀가 로스쿨 입시 당시 아버지의 이름을 자기소개서에 기재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이번 발표가 이것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교육부의 적발 사례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경북대는 현재 입시부정과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북대에서는 로펌에 근무하는 변호사들이 자녀의 로스쿨 입학 청탁을 하고, 로스쿨 교수가 청탁을 수용하기 위해 동료 교수들에게 부탁을 하고 다녔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장을 일으켰다. 교육부는 관련 보도에 대해 그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가 “조사 중”이라고 물러서는 등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지만 결국 이날 발표로 인맥을 과시하는 지원자들의 행태는 사실로 확인한 셈이다.
교육부의 조사결과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교육부가 최근 3년 이내 입학자만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면서 로스쿨 출범 초기에 불거진 부정입학 의혹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현직 변호사는 “올해 서울 소재 로스쿨 졸업생 중에 현 정부 고위공직자의 자녀가 있다”면서 “입학 당시 법조계에 몸 담고 있던 아버지의 이름을 자기소개서에 기재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결국 이번 조사대상에서는 빠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소재 사립대 로스쿨을 졸업한 A 검사장의 자녀 역시 꾸준히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됐던 인물이지만 이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들만의 리그’ 흙수저들의 울분
로스쿨이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고액 등록금과 입시장벽 등을 이유로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게 만드는 제도’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금수저’들의 합격 사례가 확인되면서 ‘흙수저’들은 울분을 토로했다. 3년 6개월 전부터 독서실 총무와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뛰며 2014년 사시 1차 시험까지 붙은 정모(37)씨는 “로스쿨 관리를 방기해온 교육부의 발표는 일부에 불과할텐데, 몇몇 명백한 사례만 봐도 얼마나 ‘그들만의 리그’인지 알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씨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월식 끊어 밥 먹은 고시생은 자기소개서에 ‘대리운전 했다’는 것 말고는 쓸 게 없는데 로스쿨 교수님들이 보시면 휴지조각으로밖에 안 보이겠다”고 자조했다. 서울 대치동 수학강사였던 그는 “사시마저 사라진다면 앞길이 꽉 막히는 처지”라고 털어놨다. 독서실 총무로 생활비를 버는 고시생 박성환씨는 “가뜩이나 돈 때문에 진입장벽을 높인 로스쿨에서 법조인의 실력과 됨됨이보다 집안 내력을 소개하는 반칙이 만연하니 없는 집 자식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조했다. 사법시험과 무관한 회사원 박남석(32)씨도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이 실제로 확인된 것 같아 서민으로서 허탈감만 든다”며 “이를 관리ㆍ감독해야 할 교육부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겠다는 발표 때문에 주변에서 더욱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모ㆍ친인척 기재 허용한 학교도 많아
로스쿨들은 부모ㆍ친인척의 신상기재를 민감하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자소서에 부모ㆍ친인척의 신상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한 15개 학교 중 6개 학교(경북대 부산대 인하대 제주대 충남대 한양대)에서 위반 사례가 적발됐지만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재를 금지하지 않은 학교도 10곳이나 된다. 이 중 경희대, 고려대, 동아대, 서울대, 연세대, 원광대, 이화여대 등 7개 학교에서 16건의 신상기재 사례가 적발됐다.
교육부 역시 신상기재 금지를 권고한 적이 없어 이들 학교에 학생정원감축 등 강도 높은 행정제재는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상기재가 적발된 13개 학교는 기관 경고 및 원장 주의, 기재금지 내용을 지원자에게 고지하지 않은 3개 대학(건국대 영남대 전북대)에는 원장 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하지만 기관 경고 등에 따른 후속 조치는 각 학교 재량이어서 사실상 불이익을 받을 로스쿨 관계자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앞으로 시정조치 등을 통해 신상기재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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