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조선·해운업계 대기업의 부실 여파로 그 규모가 30조원에 육박했는데, 이는 외환위기 후 42조원을 기록했던 2000년 이후 15년 만에 최대 규모다.
2일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말 국내 은행권의 부실채권 규모는 전년도인 2014년(24조2,119억원)보다 5조7,633억원 증가한 29조9,752억원(이하 연말 말잔)에 달했다.
■ 작년 부실채권 규모, 글로벌 금융위기의 2배
은행들은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에 따라 여신을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나눈다. 위험성이 낮은 순서대로 나뉘어지기 때문에 추정손실로 갈수록 회수가능성이 낮아진다.
여기서 부실채권은 고정이하여신을 의미한다. 작년의 경우 고정이 18조1,982억원으로 가장 많고, 회수의문은 7조4,898억원, 추정손실이 4조2,870억원을 나타냈다. 총액 규모로는 지난 2000년 42조1,132억원 이후 최대다.
작년 부실채권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14조7,308억원)과 2009년(15조9,553억원)의 약 2배에 달한다. 부실채권만 놓고 보면 우리 경제가 받는 충격이 당시의 2배라고 볼 수 있다.
부실채권 규모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60조원으로 크게 치솟았고, 이듬해인 2000년 42조원으로 줄어든 후 2001년엔 18조원으로 급감했다. 이후 2005년 9조원, 2007년 7조7,000억원까지 감소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엔 14조7,000억원으로 다시 급증했다. 2010년 이후에는 18조~25조원 선을 유지하다 작년에 급증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을 지탱하는 대기업의 부실은 세계 최저 수준이었던 국내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을 심각하게 높였다. 최근 5년간 미국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이 4.29%에서 1.59%로, 일본 은행들도 2.40%에서 1.53%로 내려갈 때 국내 은행들은 오히려 그 비율이 높아졌다. 무려 1.7%를 넘는다. 특히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각각 4.45%, 3.29%로 심각한 수준이다.

▲ 은행권 부실채권 규모 추이 이석인기자 silee@sporbiz.co.kr
■ 부실채권 불어난 이유는
이렇게 작년 부실채권이 급증한 이유는 대기업에 대한 대출이 급격히 부실해진 영향이 크다.
대기업 여신은 전체 436조7,830억원 중 17조6,945억원(4.05%)이 고정이하여신이다. 작년 한 해 부실채권 증가액은 7조3,312억원으로, 대기업 전체 여신 증가액 7조2,764억원보다도 많다.
부실채권 규모는 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난 2008년 이후 최대 규모다. 연간 증가 폭으로도 최대다. 기존에는 2013년 11조2,194억원이 총액 기준으로는 가장 많았으며 지난 2013년 6조4,315억원 증가한 것이 연간 증가 폭으로는 최대였다.
중소기업과 가계여신은 대기업 여신보다 훨씬 큰 폭으로 늘었지만 부실채권 규모는 오히려 줄었다. 중소기업 여신은 작년 한 해 동안 대기업 여신의 약 7배에 해당하는 50조3,626억원이 늘었으나 부실채권은 8,859억원 줄었다. 가계여신도 대기업 여신의 6배가 넘는 44조6,270억원이 증가했지만 부실채권은 6,125억원 감소했다.
이처럼 대기업 부실이 심각해지자 대형 시중은행들은 대출 가운데 대기업 비중을 줄이고 있는 모습이다. 전체 여신에서 3개월 이상 연체된 여신은 고정이하 여신으로 분류되는데, 고정이하 여신이 늘어나면 회수 불가능한 여신에 대비해 은행이 쌓아둬야 할 충당금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KEB하나은행은 작년 9월 통합 이후 대기업 여신을 꾸준히 줄였다. 올 1분기 대기업 대출은 작년 말보다 6.2%(1조4,140억원) 감소한 18조8,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대출은 63조4,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5% 늘었다.
성동조선과 SPP조선에 거액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보유한 우리은행도 대기업 비중을 줄였다. 지난 2014년 말 전체 여신에서 대기업 비중은 21.1%에서 올해 3월 말 20.5%로 줄었다.
신한은행은 원화대출금액을 전분기 대비 2조원(0.9%)가량 늘렸지만 대기업대출은 1,230억원(0.6%) 줄였다. 중소기업 대출은 동기간 1.3% 증가했다.
국민은행은 전분기(16조9,000억원) 대비 1,000억원 오른 17조원으로 집계됐지만 전체 여신에서 대기업대출의 비중은 8.1%로 전년 동기 대비 0.4%포인트가량 감소했다.
김서연 기자 brainysy@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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