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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우승 못할 거야” 저주 4년 만에 떨쳐버린 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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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우승 못할 거야” 저주 4년 만에 떨쳐버린 신지은

입력
2016.05.0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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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은이 2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라스 콜리나스CC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텍사스 슛아웃에서 135번째 대회 참가 만에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한 후 우승 트로피를 들고 셀카를 찍고 있다. 어빙(미 텍스사주)=AFP연합뉴스
신지은이 2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라스 콜리나스CC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텍사스 슛아웃에서 135번째 대회 참가 만에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한 후 우승 트로피를 들고 셀카를 찍고 있다. 어빙(미 텍스사주)=AFP연합뉴스

2012년 2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 최종라운드. 당시 2타차 선두를 달리고 있던 신지은(24ㆍ한화)은 18번홀 티잉그라운드에서 마지막 티샷을 앞두고 있었다. 2011년에 LPGA 1부 투어에 데뷔해 1년여만에 첫 우승을 앞둔 순간, 누군가의 외침이 신지은의 귓가를 때렸다. “제니, 너는 우승 못할 거야.” 제니는 신지은의 LPGA 선수 등록 이름이다.

신지은은 “몸에 전율이 오는 싸늘한 말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번개 때문에 경기가 잠시 중단됐지만 저주가 담긴 외침은 당시 스무살에 불과했던 어린 선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짐이었다. 결국 1시간 후 재개된 경기에서 신지은은 티샷을 해저드로 빠트리면서 18번홀에서 더블보기를 적어 내 연장전에 끌려갔다. 신지은은 연장 3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안젤라 스탠포드(미국)에게 우승컵을 내주고 눈물을 흘렸다.

후유증은 컸다. 이후 신지은은 여러 차례 우승 기회를 잡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매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러 신지은은 2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라스 콜리나스CC(파71ㆍ6,462야드)에서 끝난 발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 최종 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4개를 낚는 무결점 활약 속에 최종 합계 14언더파 270타로 정상에 섰다. 양희영(27ㆍPNS) 허미정(27ㆍ하나금융) 제리나 필러(31ㆍ미국)가 포진한 공동 2위 그룹을 2타 차로 따돌린 신지은은 우승 상금 19만5,000달러(약 2억2,200만원)를 거머쥐었다.

신지은(오른쪽)이 우승후 동료선수들로부터 축하의 물세례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신지은(오른쪽)이 우승후 동료선수들로부터 축하의 물세례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선두 필러에 4타 뒤진 공동 4위로 출발해 마지막 날 대역전극을 일궈낸 힘은 퍼팅이다. 신지은은 4라운드 첫 5개홀에서 3개의 버디를 몰아치며 이날만 보기 5개로 실수를 연발한 필러와 격차를 단숨에 줄였다. 이후 신지은은 8개홀 연속 파 세이브로 순항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2라운드 중반 이후 43개홀 연속으로 보기가 없는 무결점 플레이가 빛나며 LPGA 135개 대회 만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본인이 얼떨떨할 정도였다. 신지은은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며 “엄마와 통화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가 왈칵 울음이 나올 것 같아 받기 전에 끊어버렸다. 모든 것이 끝난 뒤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가서 엄마를 봐야 제대로 실감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신지은은 8세 때 처음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연습장과 스포츠센터를 운영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골프를 배우게 됐다. 장난 삼아 시작했지만 그 때 딸의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 신창학 씨는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친척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9세 때 한국을 떠났지만 신지은은 한국 국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말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는 “아홉 살에 한국을 떠났는데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자랑스럽고 미국으로 국적을 옮기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다.

신지은은 주니어 시절 촉망 받는 유망주였다. 2006년 US 걸스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당시 아마추어 최강으로 평가 받던 한국계 비키 허스트(26ㆍ미국)를 꺾고 우승했다. 당시 신지은은 13세로 US 걸스 주니어 챔피언십 사상 두번째로 어린 우승자였다. 2008년에는 15세의 나이로 US여자오픈 본선에 올랐다. 2010년 LPGA의 2부 투어 격인 시메트라 투어에서 1승을 거두며 상금랭킹 4위 자격으로 이듬해부터 LPGA 투어에 합류했다.

올해 초 LPGA가 직접 뽑아 홈페이지에 게재한 ‘무관의 제왕’ 5명 가운데는 신지은의 이름도 있었다. 통산 6번 대회 톱5에 들었고 톱10에는 11번이나 이름을 올렸지만 우승을 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신지은은 이날 텍사스 슛아웃 대회 우승으로 ‘무관의 제왕’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우승 후 신지은은 “다음에 또 우승 기회가 생기면 이번처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웃으며 “그래도 이런 경험을 통해 해마다 발전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신지은의 우승으로 한국계를 포함한 한국선수의 LPGA 우승은 올 시즌 치른 11개 대회에서 10개를 휩쓸었다. 이중 한국과 한국계가 나란히 5승을 나눠가졌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정재호 기자 kem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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