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박찬욱(53) 감독의 영화 ‘아가씨’(6월 개봉)는 여러모로 영화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박 감독이 ‘박쥐’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한국영화인데다, 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칸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어서다.
2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박찬욱 감독과 주연배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등이 참석해 열린 ‘아가씨’ 제작보고회에는 100여개의 언론매체가 몰려 그 관심을 증명했다.
박 감독은 “‘아가씨’는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대사가 많고, 굉장히 아기자기한 영화”라며 “깨알같은 잔재미가 가득한 영화이면서 가장 이채로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영국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아가씨’는 박 감독이 각색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원작에선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인 반면 영화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배경으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김민희)와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김태리)와 아가씨의 후견인(조진웅) 등이 얽혀 서로 속이고 속는 이야기를 담았다.
“‘핑거스미스’를 읽고 완전히 반했다”는 박 감독은 “캐릭터들이 생생하고 충격적인 반전이 있어서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아가씨’는 ‘올드보이’의 데자뷰같다”며 ‘올드보이’를 함께했던 임승용 PD가 이번에도 다짜고짜 시작해 보라며 안겨준 영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아내들의 역할이 컸다”고도 털어놨다. 임 PD의 아내가 먼저 원작을 읽고 추천해 박 감독 부부도 읽었는데, 박 감독이 차기작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핑거스미스’를 하지 그러느냐”고 추천했다고.
박 감독은 오랜 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소감도 밝혔다. 그는 “솔직히 경쟁부문에 초대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뜻밖의 초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아가씨’는 예술영화들이 모이는 칸 영화제에 어울릴까 싶을 만큼 명쾌한 영화”라며 “해피엔딩이고 모호한 구석이 없이 후련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아가씨’에 백작 역으로 출연한 하정우는 “박 감독님이 클래식 음악이 담긴 CD를 주셔서 영화를 준비하며 차에서 듣곤 했다”면서 “(영화가) 이런 분위기겠구나 싶어 영화에 접근할 때 조금 수월했다”고 말했다.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신예 김태리는 “박 감독께서 ‘나는 너로 정했다’고 하신 말이 큰 힘이 됐다”며 “힘들 때나 많은 부담이 될 때 나를 지탱하게 한 말”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다음은 제작보고회 일문일답.
-각 배우들이 역할을 소개해 달라.
김민희=“아가씨 히데코 역할이다. 순진하고 외로운 아가씨면서 막대한 재산 상속자다. 순진한 하녀 숙희(김태리)를 믿고 의지하지만 백작의 유혹에 혼란을 느끼는 그런 캐릭터다.”
김태리=“백작과 거래를 하는 하녀 숙희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아리따운 아가씨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백작과 거래하는 사람이다.”
하정우=“아가씨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 역할이다. 길게 얘기할 순 없다. 하하”
조진웅=“아가씨의 이모부 역할이다. 든든한 후견인이다. (노인역할은) 연극에서만 해봤다. 영화에서는 처음 해봐서 나에게도 도전이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기하면서 나도 이렇게 늙어가겠구나 싶었다.”
-박 감독은 오랜 만에 영화로 인사하는 소감이 어떤가.
박찬욱=“어려서 아주 내성적 성격이었다. 굉장히 조용하고 지루한 인생을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야단법석의 한복판에 있게 됐는지. 아까 뒤에서 지켜보면서 ‘팔자가 희한하게 풀렸구나’ 했다.”
-7년 만의 복귀작이다. ‘아가씨’를 택한 이유는.
박찬욱=“원작 소설 ‘핑거스미스’를 읽고 완전히 반했다. 캐릭터들이 생생하고 충격적인 반전도 있다. 그런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작품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꽤 오래됐다. 미국영화와 한국영화를 한 번씩 하는 게 좋을 듯해서 영화 ‘스토커’의 후속작으로 하게 됐다.”
-‘아가씨’는 어떤 영화인가
박찬욱=“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대사가 많고 주인공이 넷이나 된다. 그만큼 영화 상영 시간도 길다. 굉장히 아기자기한 영화이면서 깨알같은 잔재미가 가득한 영화다. 내 영화 중에 가장 이채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는데.
박찬욱=“솔직히 말해서 경쟁에 초대받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예술 영화들이 모이는 칸 영화제에 어울릴까 싶을 만큼 아기자기하고 명쾌한 영화다. 또 아주 해피엔딩이고, 모호한 구석이 없는 후련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제에서는 대개 찜찜하고 모호한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
-박 감독이 음악 CD를 배우들 모두에게 선물했다는데.
하정우=“클래식이었다. 주로 현악기 연주였다. 영화를 준비할 때 차에서 계속 들었다. ‘처음에 이런 분위기겠구나’하고 접근을 할 때 좀 수월했다.”
-박 감독은 스토리나 영상미뿐 아니라 음악까지 큰 역할 하는데
박찬욱=“배우들은 차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기니까 차에서 들으라고 준 CD였다. 차에서 들으면 (영화 촬영)현장에 도착했을 때 영화의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으니까. 이 영화는 4명의 관계를 그린 영화라서 음악도 작은 편성(악기가 많지 않은)의 실내악이다.”
-김태리는 데뷔작을 박찬욱 감독과 함께했는데.
김태리=“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박 감독과) 리딩하고 얘기도 많이 나눴다. 나는 모르는 걸 즉각적으로 물어보곤 했다. 그렇게 함께 아이디어 내는 걸 좋아하시는 듯했다. 질문하는 걸 좋아하시더라. 감독님이 ‘나는 너로 정했다’는 말을 하셨는데 힘들 때나 많은 부담이 밀려올 때 나는 지탱해 준 말이다.
-‘나는 너로 정했다’는 무슨 뜻이었나.
박찬욱=“태리양이 좀 겁을 내더라. ‘하고 싶지만 할 수 있을까’ ‘내가 들어와서 망쳐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일 텐데 그때 용기를 주는 말이었다.”
-영화를 어떻게 시작한 건가
박찬욱=“‘올드보이’ 데자뷰같았다. 임승용 PD가 당시에도 다짜고짜 안겨줘서 ‘올드보이’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시작한 영화다. 이번에는 아내들의 역할이 컸다. 임 PD의 아내가 먼저 읽고 추천했다. 이후 저희 부부가 같이 읽었다. 다음 작품을 고민할 때 아내가 ‘핑거스미스를 하지 그러느냐’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읽고 나서 완전히 반해 버렸다. 원작의 작가 사라 워터스는 과소평가되는 사람같다. 런던에서 영화 ‘스토커’ 개봉할 때 사라 워터스를 초대해 만난 적이 있다.”
-하정우와 조진웅은 체중 감량을 한 듯하다.
조진웅=“체중 감량을 꽤 많이 했다. 감독님이 후견인의 영양 상태가 너무 좋아 보이는 건 안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시키는 건 했다. 하정우도 살을 많이 뺐다. 약간 각축전이 있었다.”
하정우=“두 여배우는 체중감량 등 외적인 부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하다. 남자 배우 둘이 체중 감량은 어떻게 하고 주름은 어떻게 펴고, 얼굴에 뭘 바르는지 묻고 했다.”
-박 감독은 모든 배우들과 처음으로 작업했다.
박찬욱=“나에겐 그런 면이 도전이었다. 그 동안 늘 비슷비슷한 배우들과 일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다 처음이라 나도 긴장이 됐다.”
-하정우는 어땠나
박찬욱=“(하)정우씨는 사실 좀 제일 친근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5~6년 전에 무슨 병원에서 종합검진 받다가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특히 내가 친하게 지내는 최동훈, 류승완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배우라서 이미 한두 편을 함께해 본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넉살 좋고 스스럼 없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꽤 낯을 가리더라. 나중에는 좋은 친구가 됐다. 특히 정우씨는 감독을 해봐서 참 편했다. 배우가 감독을 하면 감독의 힘든 점을 잘 아니까 이해도가 높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안다.”
-김민희와의 작업은.
박찬욱=“김민희는 영화 ‘화차’ ‘연애의 온도’ 등으로 충무로에서 감독들이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가 됐다. 약간 시크해서 차갑고 도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대더라. 스타라고 하기엔 너무 소탈하고 솔직하다. 배역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조진웅은 어떤 배우인가
박찬욱=“조진웅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과 부딪혀서 꿋꿋하게 연기하더라. 최민식과 같이 연기하면서 저렇게 일관적으로 하기 힘든데 말이다. 최민식에게 물어봤더니 ‘아주 괜찮은 친구’라고 하더라. 눈 여겨 보라고.”
-오디션에서 김태리를 선정한 이유는.
박찬욱=“오디션을 보면 잘하는 배우들 많아졌다고 느낀다. 선택이 힘들었다. 오디션을 할 때 ‘이런 사람을 찾아야지’ 하고 미리 그려 놓는 게 있을 수 있다. 키, 생김새, 청순형 등 그런 것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오디션 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게 그것이다. 그냥 좋은 배우, 순간적인 영감을 주는 배우가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임자를 만나면 딱 느껴지는 게 있다. 그냥 본능적인 직감에 의한 선택이다. 김태리는 누구나 할 것 같은 그런 (연기)접근 방식이 아니고, 자신만의 독특한 게 있었다. 할 말 다하면서 주눅들거나 하지 않더라. 그런 것이 있어야 이런 큰 배우들과 만나면 자기 몫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선택했다.
-칸 영화제에서 김민희는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김민희=“아니다.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박찬욱=“상을 받고도 남을 연기를 한 건 사실이다. 심사위원들의 생각이, 입맛이 어떨지는 봐야 하니까. (김)민희씨 말고도 그럴 자격이 네 배우들에게 있다. (김)태리는 첫 출연작으로 칸의 여우주연상 후보가 된 셈이니 이미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 감독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박찬욱=“개봉이 딱 한 달 남았다. 이 한 달 동안 관심이 계속 이어져서 본전 이상 되는 흥행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 인터뷰를 하게 될 텐데 살살 좀 다뤄달라(웃음).”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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